경고 : 아래 글엔 spoiler가 담뿍 들어 있음. 아직 보지 않은 이는 웬간하면 50화까지 드라마 다 본 후 오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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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06월07일, 드뎌 아츠히메 50화까지 2회차 보기를 끝냈다. 1회차야 몰입, 즐겼고 2회차는 드라마를 관통하는 로직, 시청자를 사로잡는 기법 따위에 주목하며 자막 없이, 닌텐도 수도쿠(数独)를 하는 틈틈이 봤다. 아이들은 '아빠가 또 시작했구나'라며 체념 모드. 간혹 이렇게 빡 돌아버리는 때가 있는 것이, 두 번 보고도 모자라 클립을 구워 하염 없이 틀어두는 것은 2005년 '내 이름은 김삼순' 이래 오랜만이다. 이건 걍 탐닉이야.
잘 만든 드라마인 것은 분명한데, 돌이켜 보면 간만에 제대로 홀렸다는 소리이다. 무엇 때문에 내가 이토록 매료되었을까? 일본의 여성층은 왜 이 드라마에 열광했을까? 뭐, 역사를 짜깁어 이데올로기를 완성한 혐의는 짙지만 그래도 장사 비결(이른바 '코드')을 몇 가지 정리해 보자. (아래 게시물의 링크, 또는 야후재팬 검색에서 '비결;hiketsu;秘訣'을 때리면 여러 의견을 볼 수 있다.)
1. 디즈니 프린세스
아츠히메(篤姫)의 생일은 1836년 2월, 사츠마(薩摩)의 분케(分家) 출생이다. 동갑내기인 코마츠 타테와키가 12월, 사카모토 료마가 1월, 아츠히메 2월생 순으로 태어난다. 어쨌든, 혼케(本家)의 양녀로 들어가 코오케(公家;천황가, 조정)의 양녀를 거쳐 쇼군家에 시집(totsugu;嫁ぐ)간다. 드라마에서는 이걸 '벼락출세(nariagari;成り上がり)'라고 스스로 표현하는 장면이 두 번 나온다.(22화 '장군의 비밀'에서 이에사다(家定)와 처음으로 흉금을 트는 장면, 46화 '慶喜구출'에서 요시노부(慶喜)가 후시미 전투에서 도망쳐 아츠히메에게 도움을 청하는 장면)
쇼군家 미다이도코로(midaidokoro;御台所;지금의 대통령 영부인), 급격한 신분 상승으로 그 시대 계급 구조의 꼭대기까지 올라갔다는 뜻이다. 글치만 재투성이로 고생한 바 없으니 '신데렐라'와 다르고 염원을 이루기 까지 고행을 이어 가는 '바리데기'의 처절함과는 또 다르다. 드라마는 적당히 유쾌하고 발랄하며 달콤하다가 약간 비장한 결의의 냄새가 나는 따위 분위기로 '출세'를 다룬다.
근데 생판 남이라면 잘 된단들 감흥이 일어나긴 어렵다. 따라서 감정 이입이 제대로 되어야 주인공이 세속적 성공을 이루어 가는 과정이 배로 즐거울 게다. 그래서 시청자를 어찌 사로잡느냐, 주인공과 동일시하게끔 만드느냐가 드라마 장사를 위한 관건이며 이걸 위해 1화(天命の子)~7화(父の涙)까지 '책 좋아하여 남장을 하면서까지 서원에 드나드는, 바둑을 즐기는, 백성들의 삶에 관심을 갖고 긍휼지심을 안고 천한 신분의 사람들과 거침 없이 교류하는' 말괄량이로 묘사된다. 도저히 미워할 수 없는, 매력적인 캐릭터라는 거지.
예로써 어린 시절의 오카츠, '백성들은 먹을 게 없어서 굶는데 내가 배불리 먹어도 되는 걸까?'라며 며칠을 굶는 장면, 여기에 대한 어머니의 답은 '세상 모든 사람은 저마다 역할이 있는 거란다.', 이것이 씨앗이 되어 나중 오오쿠보家에 도미를 내어 가며 긍지(hokori;誇り)를 공부하고, 에도로 갈 때 '나는 내 역할을 다하기 위해 에도에 갑니다 (私は私の役割を果たしに江戸へ参ります。)'로 발전한다.
사츠마 이마이즈미 시마즈家(今泉島津家) 시절에, 전편을 관통하는 키워드 몇몇이 복선으로 깔린다. 예로써
- 역할, 그리고 그 역할을 뛰어 넘는 무엇
- 일본 제일의 남자 (日本一の男)
- 같은 가문의 사람 끼리 싸우는 것은 이상해요
- 한 편의 이야기만 듣고 판단하지 말라 (ippoukiite sadasuruna;一方聞いて定するな)
- 망설이게 될 경우 생각하지 말고 느껴라. 마음이 가리키는 방향으로 가라.
- 여자의 길은 외길, 운명을 거스르고 돌아오는 것은 부끄러운 일
이 중 마지막의 '여자의 길은 외길(onnano michiwa ipponmichi;女の道は一本道)'은 내가 지극히 좋아하지 않는 말인데 드라마에서는 바람직한 여성상으로 묘사, 당연시된다. 나는 이문열의 충신론 비스므리하게, 그르다 판단되더라도 한 번 선택한 길이기에 계속 가야한다는 언명을 혐오하며, 이런 이데올로기를 담은 드라마가 여성층에 대히트를 때렸다는 게 이해되지 않을 정도이다. 뭐, 아무려나 이건 드라마가 히트한 후 출간된, 드라마의 각본을 쓴 작가(타부치 구미코; 田渕久美子)가 지은 책의 제목이기도 하다.
적당히 달콤한 멜로를 섞어 둔 것이, 이에사다가 약간 맛이 갔다는 것을 암시하는 장면이 초장부터 21화 까지, 19화~20화에서 정말 바보(uchuke;虚け, angu; 暗愚)인지 아닌지 아츠히메가 절절이 궁금해하는 장면이 이어진다. 그러다 20화(婚礼の夜) 집오리(ahiru;家鴨)를 몰아넣는 장면, '위험하잖아? (危ないではないか?)'가 변곡점, 그 이후엔 당췌 왜, 뭐땀시 멍청이 노릇을 하고 있는지 이유에 골몰하고 드뎌 22화(将軍の秘密)에서 '지극히 영민명석(kiwamete eibinmeiseki;極めて鋭敏明晰)'한 인물로 드러난다. 걍 뿅 가게 하는 설정인 거다.
2. 롤플레잉
일단 주인공을 자신과 동일시한 시청자를 열광하게 하는 장치 중 하나가 롤플레잉 게임의 퀘스트(quest)이다. 주인공은 단계별로 새로운 과제를 부여 받아 그걸 해결(클리어), 경험치와 돈을 얻어 성장한다. 이건 한국드라마 '주몽'이 그렇다던데 (난 보지 않았다), 갈수록 난관(강력한 보스 출현)이요 클리어 하기 위해 높은 수준의 내공이 요구된다.
이 드라마의 퀘스트는 고비 마다 등장, 아츠히메를 성장시킨다. 주로 사람과 사람 사이의 커뮤니케이션, 갈등 관계에 있는 상대와 접점을 찾아 친화력을 발휘함으로써 친밀감 있는 아군(migata;身方), 파트너로 바꾼다.
- 사츠마 재정 흑자 전환을 주도하는 집사와 2회 만남 (주제어 : '역할')
- 시마즈 나리아키라(島津斉彬)와 첫 만남 (여기서 나리아키라는 휘하 가문 딸들을 면접, 양녀감을 고른다)
- 가출 소동 후 나리아키라와 바둑 (저는 아버님께 이용당하는 겁니까? ; 私は父上に利用されるんですか?)
- 히메 출진, 끈덕지게 기다려 양모 히사히메(英姬)와 두 번째 만남
- 전 당주 시마즈 나리오키, 오유라의 타카나와(高輪; 지금의 시나가와(品川) 부근) 저택 방문
- 벚꽃놀이를 빙자한 미토(水戸)번주 토쿠가와 나리아키 면접, 설전 (新大日本史, 진자의 극점과 극점)
- '무지를 놀림 받는 것은 가문의 수치 ; 無知を笑われたら当家の恥'를 매개, 나리아키라와 히사히메가 소통.
- 아베마사히로(安部正弘) 사후 이에사다와 정면 승부 ('밀명을 받고 성에 올랐다'), 흉금 튼 대화를 이끌어 냄
- 해리스 접견, 어떻게 만나면 세이다이쇼오군(seiidaisyoukun;征夷大将軍)의 위엄을 지킬까? 지혜 짜내기
- 에도성 무혈개성, 토쿠가와家 존속을 위해 사이고 타카모리(西郷隆盛)와 담판
마지막 미션인 '에도성 무혈개성', 이걸 위해 드라마 전반에 걸쳐 아츠히메의 성장기부터 사이고 타카모리와 인연이 줄기차게 묘사되는데, 역사적 의미는 꽤 있다고 한다. 사츠마가 에도성을 공격했다면 막부(군사 규모는 훨씬 많았다) 에도는 불바다가 되었을 것이고 기회를 엿보는 외국 열강이 개입했을 것이라는 것이지. 그래서 '아츠히메가 일본을 구했다'라고까지 묘사하기도 하며, 따라서 극 초반에 '같은 가문 사람 끼리 싸우는 것은 이상해요'라고 앳된 아츠히메의 대사가 의미 있다는 게다. 드라마 후반엔 '전쟁(내전)만은 피해야 한다'는 말이 줄기차게 아츠히메나 코마츠 타테와키의 대사로 이어지니까.
사츠마 본가로 올라간 후, 에도 번저(hantei;藩邸)에 들어간 후, 에도성 오오쿠(oooku;大奥)에 올라간 후, 아츠히메는 크게 세 번의 환경변화를 겪는다. 드라마는 처음에 당혹스럽거나 부적응으로 마음고생을 하다가 계기를 만나 변화(퀘스트 수행)한다. 비록 그 전후 대비를 극적으로 보이기 위해 변화의 전반부를 설정을 거진 호들갑 수준으로 설정하지만 (예: 사츠마 본가에 올라갔을 때 예법을 몰라 실수, 시녀들이 킥킥거리는 장면) 뭐, 부담 없이 시청자가 기대감을 갖고 편히 보도록 장치려니 하며 너그럽게 여길 수도 있는 일이겠다.
하여튼 일단 몰입 모드에 도달한 후에는 주인공 아츠히메가 어려움을 하나 극복할 때 마다 시청자는 희열을 느낀다. 따지자면 드라마가 그렇지 실제 역사적 사실은 다를지도 모르는 건데, 그리고 보는 이가 있는 현실이 달라지는 것도 아니련만, 아마도 (내가 좋아하는) 롤플레잉(RPG) 게임의 속성이 마찬가지일 터. 미사려구 다 발라내면 걍 현실도피인 게야. 세태가 삭막하고 살기 팍팍할수록 코메디 영화가 잘 팔린다잖아?
3. 쉬운 역사, 대중화 시도
NHK 대하드라마는 정통 사극을 표방하므로 웬간한 역사 상식을 갖춘 시청자가 아니면 접근이 어렵다는 평이다. 그래서 매니아 수준이 열광하며 남성의 전유물 비스므리하단다. 그걸 (여배우가 원톱으로 나오는 김에) 여성 취향으로 싸그리 손질했단다. 역사와 그다지 친한 사이가 아닌 이라고 할지라도, 드라마의 중간부터 보더라도 흐름을 따라갈 수 있게끔 곳곳에 배려해서리 대중성이 올라간 모양이다.
배려란? 다른 연도의 NHK 대하드라마와 비교해서 뚜렷이 달라진 점을 세 가지 꼽는다.
3-1. 매화 초반의 요점 정리
매화가 시작되면 초반 1분 남짓, 주제곡이 흐르기 직전에 현재까지 전개된 장면들의 핵심을 요약하고 그거이 극의 흐름 상 어떤 의미를 갖는지 각종 도표, 그림을 곁들인 보조 설명 나레이션이 흐른다. (드라마 즐기는 차원에서는 당근 비추이지만) 아마도 이것만 클립을 추출, 모음집으로 보면 1시간 이내 (1분*50화) 어떤 드라마인지 감 잡는데 지장이 없을지도 모르겠다. 뭐, 거의 항상 '아츠히메의 운명은 어떻게 될 것인가?'로 맺는 말에 짜증나는 단점이 있기도 하다만, 초심자를 배려한 친절이라는 측면에서 긍정적이다. (다른 연도는 지난 클립을 짜깁어 요약한 것이 대부분)
3-2. 극 전개 공간 집중
모르면 재미 없잖나? 초심자의 어려움 중 하나가 대하사극은 여러 공간의 인물들이 비슷한 비중으로 동시에 쏟아져 나와 이름과 직책, 지명 외우기에 골머리를 앓은 나머지 지레 적응을 포기하게끔 한다는 게다.
대비하여 '아츠히메'에서는 어린 시절이든 사츠마 본가 양녀 시절이든 새 공간이 펼쳐지면 그 공간을 집중해서 보여주며 인물관계도 '가족' 중심이다 보니 그다지 복잡하지 않다. 그래서 익숙해질 때 까지 몇 화든 진행, 조금씩 여러 공간으로 확장하는 설계이므로 동시다발적으로 새 인물이 등장하여 머리를 괴롭히는 일이 적다.
드라마 어디를 봐도 아츠히메가 현재 위치한 공간을 중심으로 극이 전개되며, 관련된 흐름 상 비추는 타 지역에 할애된 시간은 매우 적다. 따라서 드라마 어디서 시작하든 몇 화만 참고 견디면 쉽게 적응할 수 있다는 야그. 이건 원톱 시스템의 장점인지도 모르겠다.
3-3. 음악
매우 서정적인 클래식 (역대 NHK 대하드라마가 고수한 방식)과 록이 섞여 장면에 걸맞게 적절하게 깔린다. 예로써 오오쿠보 토시미츠(大久保利通)가 처음 사츠마 바깥으로 나간 쿠마모토(熊本), 청운의 꿈을 품고 사이고 타카모리와 함께 간 곳에서 받은 수모로 돌아와 '어머니, 저는 귀신(oni;鬼)이 되겠어요'라 던지고 어머니(오후쿠)가 '네가 귀신이라면 나는 귀신의 어머니가 될 뿐인 일 (대수롭지 않은 일)'이라고 받자 흐르는 강렬한 톤의 록은 무쟈게 인상적이다. NHK 대하드라마에 록이 등장한 것은 처음이란다.
그래서 매니아층(으로 보이는 이)은 '이게 무신 NHK 대하드라마야?'라며 폄하하기도 한단다. 특히나 주인공을 돋보이게 하려고, 극적 재미를 추구하느라 역사적 사실을 작위적으로 짜깁은 혐의가 짙기에 더욱 무뇌아(^^)를 겨냥해 성공한 드라마라는 악평도 있나 보다. 한번 눈 밖에 나면 모든 게 맘에 안드는 것인지 '미야자키 아오이'가 연기 폭이 넓은 배우 3위라니, 말도 안돼'라는 한탄을 하는 이도 있더라. (아오이 본인은 연령대를 미리 계산해서 연기했다고 밝히고 있다. 분명 사츠마 초기의 발랄 분위기, 낭랑한 목소리와 운명 직전 텐쇼인의 나직 위엄 있는 음성, 표정은 대비된다.)
덧붙여, 드라마 재미 있게 본 후 '골빈당을 위한 드라마'라는 평에 발끈할 필요는 없다. 왜냐면
A. 그 드라마는 골빈당을 위해 만든 드라마이다.
B. 따라서 그 드라마 본 이 모두가 골빈당이다.
명제A로부터 명제B를 추론할 수는 없다. 드라마 제작 의도가 어떻든 간에 골찬당(^^)도 재미 있게 볼 수 있는 법이거든. 이것은 'a이면 b이다' 에서 출발, '따라서 b이면 a이다'를 추론해 낸, '명제의 이(裏; 항상 참은 아니다)에 해당하며 집합관계를 도외시한 언명이다. ('서울 사람은 대한민국 사람이다'에서 '대한민국 사람은 서울 사람이다'를 추론해 낼 수는 없다) 근데 정치인이나 언론의 선동에서 원 없이 보는 바, 거기 넘어가면 골빈당이 되는 거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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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까지는 이른바 '베스트셀러'가 된 비결을 나름대로 정리했는데, 개중 눈에 거슬리는 장면과 그 배후에 깔린 로직을 파고 들어 보자.
장면 1. '徳川の妻(27화)', 갑자기 뭔가 깨달은 표정의 아츠히메, 오오쿠 복도를 내달아 (출입이 금지되어 있는) 오모테(omote;表;쇼군이 정사를 보는 곳)로 달려 간다. 눈이 휘둥그레진 이에사다에게 '토쿠가와의 아내임을 깨달았다'라고 말하자 이에사다는 빙그레 웃으며 '그러냐, 결심했냐'라고 말한다.
일견 황당한 장면이다. 기껏 주위 만류를 뿌리치고 대낮에 쇼군을 만나러 달려 가서 한다는 말이 체제 순응형의 맥 빠진 발언인 게다. 근데 곰곰히 따지니 이 장면의 의미는 이 드라마에서 대단하다. 아츠히메의 향후 행동을 설명하기 위한 장치, 분수령이라고나 할까?
직전까지 아츠히메는 양부 나리아키라의 밀명을 받아 '히토츠바시 요시노부(一橋慶喜)'를 차기 쇼군으로 내정하도록 하는 밀명을 수행한다. 그런데 그 일이 (시집 온) 토쿠가와 가문의 앞날에 도움이 될지 않을지 자신은 없다. 글치만 양부와 사츠마에 도움이 되리라 생각해서 시킨대로 여러 작업을 한다.
그러다 아래 장면2에 나오는 이에사다의 '가족론'을 듣고 대오각성한다는 설정이다. 최고 우선 순위가 사츠마로부터 토쿠가와 종계로 바뀌고 그 이후 히토츠바시든 기슈(kisyu;紀州)든 어느 쪽을 밀지 않고 중립을 표방하며 키쿠시마의 끈덕진(증말 끈덕지다) 요청에 생까는 포지셔닝을 하게 되는 거다.
딱 절반, 드라마의 전반부를 관통하는 사츠마의 밀명을 수행하는 처지에서 후반부의 에도 토쿠가와 가문을 지키는 역할로 흐름이 바뀌는 거다. 그 흐름이 계속 이어져 사츠마에 돌아가지 않고 (적어도 3번 권유가 들어온다), 에도성 무혈개성을 결과하고 토쿠가와의 여인으로 운명한다. 옳고그름, 바람직한지 않은지를 떠나 이 드라마에서 주인공을 지배하는 로직이 바뀌는 장면이다. 그러니 호들갑 난리법석을 동원해 크게 다룰 밖에.
장면2. '嵐の建白書(26화)', 대로(dairo;大老;지금의 총리) 후보인 히토츠바시派 마츠다이라 요시나가(松平慶永)와 기슈派 이이 나오스케(井伊直弼) 면접을 본 직후, 이에사다가 이이 나오스케를 선택했다, 왜냐면 토쿠가와 가문에 의한 정치를 할 것인 바 자신(토쿠가와)의 가족을 우선한 결정이라고 말한다.
향후 이어지는 아츠히메의 생애, 의사결정 향방을 결정 짓는 로직인데 심각한 비약이 있다. 일본의 운명이냐, 토쿠가와家의 장래이냐 갈림길에서 후자를 우선한 게다. 22화부터 줄기차게 일본의 앞날을 걱정해 왔던, 똘똘한 이에사다가 왜 결정적인 대목에서 느닷 없이 가족을 우선하누? 그렇잖음 토쿠가와家가 망하기라도 한다던가? 이건 원체 일관성 없는 역사를 그럴싸하게 작가가 눈속임으로 두들겨 맞추었다고 할 수 밖에 없다.
그 때 히토츠바시派가 집권하여 열후회의(rekkou kaigi;列侯会議; 독일이 했다는, 실력 있는 번의 제후들의 회의) 체제로 갔다면 무진(boshin;戊辰)전쟁은 일어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뭐, 22화에서 이에사다가 '누가 해도 일본이 망하는 건 변함 없다'라고 말했고 역사에 가정은 덧없는 일이겠지만. 결국 한참 후 15대 (마지막)쇼군으로 취임한 요시노부가 열국회의를 받아들이지만 실력 있는 제후들(시마즈 나리아키라, 토쿠가와 나리아키)이 죽은 이후인지라 요시노부가 독주, 약빨이 안 먹혀드는 것으로 이후 묘사된다.
장면3. '桜田門外の変(32화)', 대로로 취임한 이이 나오스케가 '안세의 대옥'을 벌여 반대파를 무자비하게 숙청한 이후, 1860년 3월3일(여자 어린이날이라 기억함) 오모테에 가까운 사쿠라다門 앞에서 입궐하다가 미토 번사들이 주축이 된 백주 테러로 죽기 직전, 아츠히메와 차를 나눈다. '분하지만 차가 무쟈게 맛있다'고 아츠히메가 말하자 '솔직한 분이시군요'라 화답, 상호 인간적 교감이 형성될 기미가 보인다.
어떤 인물의 죽음 직전에 아츠히메가 관여해서 흐름을 바꾸고 그 직후 죽어 버리는, 시청자의 상실감을 극대화하는 장치가 곳곳에 보인다. 아마도 이거이 일본식 비극미일지도 모르겠다만. 예로써 이에사다에게 '바보 짓 이제 관두시지?' 말한 이후 군신들에게 '조용하라니깐!'이라 외치는 장면, '판단하지 말고 마음이 이끄는대로 행하라'고 아베 마사히로에게 말한 직후 '일본이 패배합니다!'라고 토쿠가와 나리아키에게 강하게 말하는 장면 따위. 아츠히메에게서 울림을 받아 뭔가 색다른 짓을 하기만 하면 그 인물은 죽는다.
이이 나오스케는 일본에서 인기 없는 축에 속한다. 그 귀중한 시기에 토쿠가와 존속을 위해 내부에서 칼을 휘두르고 (결과적으로 그릇된 방향으로) 시간을 낭비했으니까. 글치만 그가 나서 자란 곳, 시가현 비파호 (biwako;琵琶湖;일본에서 젤 큰 호수, 주위 200km, 인공위성에서도 보인단다) 동북쪽에 위치한 히코네성(彦根城)에 가면 지역 대표 거물로서 동상이 있다. (올해 '개국150주년 이이나오스케 전시회'가 열리고 있음)
그렇담 위 장면의 의미는 무언가? 위에 읊은 바 비극미의 고조를 겨냥한 것이기도 하려니와 아츠히메와 드잡이질을 한 이는 모두가 아츠히메에게서 인간적 친밀감을 갖고 마감하도록 설정되어 있는 게다. (드라마에 등장하는 적대적 설정의 누구도 예외가 없다) 이로써 주인공은 올마이티 전인격체가 되며, 역사적 인물을 누구도 악인으로 묘사하지 않음으로써 드라마 장사를 돕는다. 이미지 사회에서 진실은 자본주의의 적인 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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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긴 드라마는 드라마일 뿐, 재미 이상 의미를 부여하는 것이 무망할지도 모르는 일이다. 이 드라마에서 무쟈게 폼나게 나오는 이에사다(사카이 마사토(堺 雅人)役), 실제는 정사를 돌보지 않았고 공식 석상에 모습을 나타낸 기록이라곤 딱 두번, 미국 공사 해리스를 접견할 때(본인은 입만 벙끗, 발을 구른 것은 뒤에서 말하는 이에게 보내는 신호였다는 설도 있음), 그리고 후계자인 14대 쇼군을 공표할 때 였다고 하니까. (그 공표 다음 날 급사한다. 드라마 전개는 시간 간극이 있음. 독살설도 유력.)
그러니 실제 그리 알콩달콩한 부부였는지는 누구도 모린다. 원작자가 측근 증언을 참고했다지만 몇 다리 건너 바람직한 이미지로 가공된 인식을 전해 받았을지 알 게 뭐람? 미야자키 아오이가 인터뷰에서 많이 받았던 질문, '그 시대로 돌아가 아츠히메를 만난다면 뭐라고 말할 것인가?'에 '이렇게 금슬 만빵한 부부를 연기했다고 말해 주겠다'라 답변하더라. 실제 어떠했는지 시청자가 상상하도록 하는 발언은 드라마 장사를 위해, 자신의 연기 성과를 위해 그다지 달갑지 않은 게지.
코마츠 타테와키의 극중 거동은 매우 황당하다.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아츠히메를 걱정하고 편드는 발언을 하며 병든 몸을 이끌고 더 악화될지도 모르는 판에 오오쿠 떠난 텐쇼인을 방문하는, 정신 나간 짓을 하는 것으로 묘사되는데, 뭐 드라마의 축을 담당하는 역할인지라 어쩔 수 없이 마지막 49화까정 흥행을 위해 동원되었겠지만, 실제 아츠히메가 코마츠 타테와키와 만났다는 기록이 없단다. 뭐, 이 드라마로써 '협상의 달인'으로 메이지 격동기의 사이고 타카모리, 오오쿠보 토시미츠에 영향을 미친 인물로 재조명이 된 긍정적 측면은 크다만.
더우기 드라마 50화의 자는 듯 지극히 편안한 운명과 대비하여, 실제 텐쇼인은 뇌일혈로 쓰러져 의식 회복 못한 채 숨을 거두었다고 한다. 이런 식으로 대조하며 따지고 들어가면 한도 없을 터, 결국 나는 지난 석달 간 잘 만든 이미지를 즐긴 게다. 그리 향유함에 있어서 진실은 중요하지 않으며 그저 내가 바람직하다 여기는 모습이 화면에 있으면 그로 족한 게다. 어쩌면 내가 지지하거나 애정을 갖는 세상 만사를 그런 태도로 보는 것은 아닐까? 경계할 일인진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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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참 시간을 이 드라마에 빠져 허우적거린 후 약간의 객관을 찾은지라 부정적인 묘사를 꽤나 했지만 결론은 이 드라마 볼 만 하다는 것이다 (나만 망가질 수는 엄따). 특히 에도말엽 메이지 유신 전후 격동기에 관심 있는 이라면 강추이다. 도대체 일본이 근대국가로 그리 빠르게 성장할 수 있던 비결이 무엇일까? 1850~1880년에 어떤 일이 어떤 로직에 기반해서 일어났는지 대다수 일본인도 잘 모른단다.
가치관의 혼란은 극중 사츠마가 영국 군함과 전쟁하는 장면에서도 나온다. 어느 번보다 개국의 필요성을 중시한 것으로 묘사되는 사츠마는 양이(jyoui;攘夷;anti 외세)를 실행할 이유가 없었던 거다. 부국강병은 내세운 논리일 따름이요 실제는 막정에 참가할 야욕이 우선했을지도. 그러니 샷쵸(사츠마-죠슈)동맹에 이어 (조정의 반역자라는 딱지를 씌워가며) 타도 막부를 실행한 것일지 모른다.
그래서 작심하고 즐기는 한편 주목하는 한 이 드라마에서 얻을 것은 많다. 실제 역사가 어떠했든 (현세를 사는 일본인 다수가 관심 없다. 한국인인들 한국 역사에 대해 그런 자세 아닐까?), 내 자신 그 시대 그 공간의 그 인물 처지라면 어떠했을까, 픽션일지라도 인물들이 문제를 풀어가는 방식, 의사소통의 경로를 눈여겨 보는 건 즐거운 일이다. 물론 드라마가 그런 시각에 충실해야 볼 가치가 있을 것이며 2008년 NHK 대하드라마 아츠히메는 인물과 사건을 지배하는 로직을 나름대로 생생하게 그리고 있다.
(2009.06.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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