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까락 운동/감상문

료마가 간다 (竜馬がゆく; 司馬遼太郎 지음) - 1 (막말;幕末)

섬그늘 2009. 7. 11. 02:43

료마가 간다를 읽었다. 시바료타로가 1962~1966년 산케이신문에 연재한 소설이라고 한다. 말로만 듣던 시바료타로 작품을 읽은 것은 처음이다. (그의 소설이 원작이 된 NHK대하드라마 공명의 갈림길(功名)을 본 적은 있지만)

 

일본 역사 상 천재라고 하면 전국시대 오다 노부나가(織田信長)와 에도 말엽 사카모토 료마(坂本龍馬)를 꼽는다고 한다. 둘 다 그 시대 구성원들이 생각하지 못하는 발상을 했고 그것을 현실에서 관철시켜 역사를 바꾸었다는 공통점이 있단다. 아츠히메(篤姫)를 통해 막부 해체, 메이지 유신의 흐름을 접한 김에 미뤄 두었던 소설을 사서 읽었는데, 이 소설 역시 한 감동 준다. 길어서 그렇지, 일본인의 현재 사고가 형성된 경로를 탐구하는 이에게 강추이다. (도서출판 창해, 전 10권)

 

마찬가지로, 공부의 확장을 위해 일본 위키피디아 링크를 디립다 단다.

 

료마가 간다 (馬がゆく)

시바 료타로 (司馬遼太)

 

우선 이름부터. 시바 료타로(司馬遼太郎)는 필명이다. 중국 역사가 사마천(司馬遷)에서 이름을 따 왔는데 그에 턱 없이 못 미친다는 뜻의 遼(멀 료)를 붙였다고 한다. 그러고 보니 요동반도(遼東半島)가 흐벅지게 동쪽에 있다는 뜻이었어? 료마가 간다(竜馬がゆく)의 용(;ryu)은 원래 이름 馬와 다른 한자를 썼는데 그것으로 픽션임을 은연 중 암시하고 있다고 한다.

 

***

 

료마는 시코쿠(四国;sikoku) 도사번(土佐藩;tosahan), 지금의 코치현(高知県;kouchiken) 코치시, 하급무사(郷士;gousi) 집안의 차남으로 태어났다 (183613, 음력으로 1115). 상급무사(jousi)에 비해 비천한 계급이지만 번에서 손 꼽을 정도로 유복한 집안이었다고 한다.

 

어린 시절에는, 서당에서도 포기할 정도로 지진아/코흘리개/오줌싸개였다고 한다. 그러고 보면 어떻게 된 게 특출한 위인이라는 인물들은 제도권 교육에 순응하지 못한 인간들이 많다. 다음 아고라의 세일러님의 글 처럼 제도권 교육이란 공장형 인간을 만들기 위해 설계되어 있으므로 창의성, 협동심이 결여되어야 한다지. 대량생산 소비시대의 대중은 똑똑하면 곤란한 거다. 군대에서도 보병이 똑똑하면 사고 친다고 하잖나?

 

그러다 검술도장에서 두각을 나타내어 그의 나이 17세에 에도로 유학간다. 그러면 1836+17=1853, 미국 페리가 쿠로후네(黒船;kurohune) 4척을 몰고 우라가(浦賀;uraga) 港에 쳐들어와 나라를 열라고 요구한 해이다. 이 때부터 일본은 한 바탕 파란만장 격변을 겪어 막부(幕府;bakuhu)가 몰락하고 메이지(明治;meiji) 유신으로 연결되는데 주요 사건은 아래와 같다. 료마를 이해하려면 이 정도는 알고 넘어가는 게 좋겠다.

 

료마가 과대평가되었다는 비판도 있지만, 지금의 코치시 앞바다 모래사장에 수에즈 동쪽에서 제일 큰료마의 동상이 남아 있다. 메이지 유신 이후 만백성 성금을 모아 지은 건데 (미츠비시상회가 50,000엔 거금을 내겠다고 했는데, 되도록 많은 이들의 십시일반으로 만들겠다고 거절당했단다.) 2차세계대전(태평양 전쟁) 때 군수물자 원료로서 전국의 동상을 녹여 제꼈는데 이 동상만큼은 건드리지 않았단다. 그 정도로 일본인의 사랑을 받는 인물이라는 거다. 왜 그럴까? 그의 일생 33년 간 어떤 일을 했단 말일까? 그걸 따지기 위해 그가 살았던 시대를 개괄해 보자.

 

***

 

1.     막부 말엽의 주요 사건 (막말(幕末;bakumatsu)의 정리를 참조했음)

 

1853년 페리 내항, 12대 쇼군 이에요시(家慶;ieyoshi) 죽음, 13대 쇼군 이에사다(家定;iesada) 취임

 

1854년 미일 화친 조약 체결. 쇄국체제를 끝냄. 러시아와 화친 조약 체결.

          미국 공사 해리스, 시모다(下田;simoda)에 상륙.

          해리스의 목표는 통상조약. 홋타(堀田;hotta) 로쥬가 천황의 칙서를 구함.

          화친조약은 용납할 수 있었으나 통상조약은 코메이(孝明;koumei) 천황이 극구 반대.

          (무쟈게 외국인을 싫어했다고 함.)

 

          장군 후계를 둘러싸고

          남기슈(南紀州;minamikisyuu)파와 히토츠바시(;hitotsubashi)파의 대립이 이어짐.

 

18584 이이 나오스케(井伊直弼;iinaosuke), 대로(大老;tairou)에 취임. 남기슈파가 이겼다는 뜻.

          6 천황 칙서(허락) 없이 미일 수호통상조약 체결. 엄청 불평등 조약이었다고 평가됨.

                문제가 된 것은 영사재판권 인정, 관세자주권 상실, 일방적 최혜국 대우 약속 등.

                같은 내용으로 영국, 프랑스, 네덜란드, 러시와와 체결. (안세(;anse) 5개국 조약)

        10 14대 쇼군 이에모치(家茂;iemochi) 취임. 1846생이니 이 때 그의 나이 12.

 

1859안세의 대옥(安政大獄) 이어짐. (막부에 의한 반대파에 대한 정치적 탄압)

          통상조약에 반발, 에도성에 올라간 번주 3, 허가 없이 등성(登城)했다고 근신처분. 3명의 명단은

          - 토쿠가와 나리아키(徳川斉昭;미토(水戸;mito), ),

          - 마쯔다이라 요시나가(松平慶永;에치젠(越前;echijen)),

          - 토쿠가와 요시가츠(徳川慶勝;오와리(尾張;owari)) ; 5년 후 1차 조슈 정벌의 총대장

 

          쿄토에서 쇼군 추대를 위해 활약하던 히토츠바시파 공작원 3명 처형

          요시다 쇼인(吉田松陰;yoshida shouin;조슈(長州;choushuu)번의 정신적 지도자) 등 처형.

          (로쥬 마나베 아키카츠(間部;manabe akikatsu) 암살 음모죄)

          보다 못해 조정이 미토번에 직접 칙서 보냈으나 (무오(戊午)의 밀칙(密勅)), 막부에 발각됨.

          미토번을 비롯한 개국 반대파에 대한 탄압이 더욱 거세짐.

 

1860 3, 사쿠라다문의 변 (桜田門外;sakuradamongainohen)

          324 (음력 33),

          이이 나오스케가 미토 번사 17명 사쓰마 번사 1명의 습격으로 살해됨.

          (이이 측은 가마꾼 포함 16. 상처를 입지 않은 7명 전원 1862년 참수)

 

          지금으로 말하면 국무총리가 출근하다가 궁궐 문 바로 앞에서 암살 당한 사건.

          이로써 막부의 권위가 실추, 이후 존양양이파의 테러가 공공연히 자행되고

          그 반작용으로 신센구미 등의 존왕양이파(또는 반 막부파)에 대한 테러도 가열차게 자행됨.

 

1861년 존왕양이 운동 거세짐 : 물가 앙등, 불평등조약 반발

          물가 앙등이란, 무역에 따라 대외 금은 가격 차 발생으로 금 유출, 그 대책으로 신화폐 발행,      

          근데 그 화폐 만안고반(万延小判;manenkoban)의 금 비율이 낮아 물가가 치솟았다고 함.

          (화폐 가치가 떨어지면 인플레이션이 발생하는 것은 동서고금, 만국 공통)

 

18625테라다야(寺田屋;teradaya) 소동

               군사를 이끌고 교토로 간 시마즈히사미츠의 행위를 막부 토벌로 오해, 봉기한

               아리마신시치(有馬新七)를 비롯한 사츠마 번사들을 번의 사자가 설득하지만 격투 발생.

          8나마무기(生麦;namamugi) 사건 : 사츠마 군이 에도에서 돌아올 때 영국인 살해.

               위치 : 요코하마 쯔루미구,

               다이묘 행렬에 말에 내려 예를 표해야 하는 관습을 몰랐는지 무시했는지 4명 영국인이

               말 탄 채 행렬을 거슬러 올라감. (사츠마 군의 손짓발짓을 가장자리로 통과로 알아 들었다 함)

       12공무합체(公武合体;koubugattai)  

              천황의 여동생 카즈노미야(和宮;kazunomiya)가 쇼군 이에모치와 혼례

 

1863년 쇼군 이에모치, 교토에 가서 천황에게 오는 510일 양이를 결행하겠다고 약속함.

           510, 조슈가 칸몬(関門;kanmon)해협에서 외국상선에 포격,

                       그러나 그 달 말 반격 당해 포대 점거 당함.

           힘이 모자란 것을 한탄한 타카스기 신사쿠(高杉晋作;takasugi sinsaku), 기병대(奇兵隊;kiheitai) 창설

           7사츠에(薩英;satsuei)전쟁 (3일간 교전). 사망 영국수병 11 (부상 50), 사츠마 5

                 나름 선전했으나 사츠마 시가도 불타 사츠마 번 역시 양이(攘夷;joui)가 불가능함을 깨달음.

        8월 막부에 항거하여 양이파가 들고 일어난

         天誅組(;tenchuuguminohen), 生野(;ikunonohen)이 연쇄적 발생,

             이건 후세 들어 역사적으로 큰 의미를 갖는 사건이었으나 당시에는 무력하게 진압됨.

             토사근왕당(土佐勤王党), 야마우치 요도(山内容堂;yamauchi youdou)에 의해 궤멸

             (타케치 한페타(武市半平太;takechi hanpeita) 할복)

        8 18일의 정변. 아이즈, 사츠마번에 의해 조슈번 교토에서 추방, 5공경도 유배

                               극단적 양이파인 조슈번의 세력이 꺾이고 사츠마 등 공무합체파가 득세.

        12참여회의(参与会議) 최초 개최.

               요시노무, 마츠다이라 요시나가, 다테 무네나리, 시마즈 히사미츠 등 5명 참석.

               그러나 요시노부(쇼군 후견인 자격)의 비협조적 태도로 결렬

 

1864 4월 미토번에서 막부에 항거하는 天狗党の乱(;tengutounoran) 발생, 막부군에 진압됨.

          6이케다야(池田屋;ikedaya) 사건 발생. 신센구미가 조슈번사 다수 살해, 체포.

          7월 열 받은 조슈, 교토로 출병, 금문의 변(禁門の変;kinmonnohen), 아이즈, 사츠마 병사와 전투

                하마구리고몬(蛤御門;hamagurigomon)의 변이라고도 하며 이로 인해 사츠마 번이 약진함.

               조슈 측은 이 참패로 사츠마에 기필코 언젠가는 원수를 갚겠다고 벼르는 앙숙이 되는데,

               조정으로부터 역적으로 몰려 교토에서 추방, 막부가 조슈정벌군 파견함.

               게다가 시모노세키에서는 4개국 극동함대 연합 포격 받아 패배, 극단적인 궁지에 몰림.

   

          1차 조슈정벌. 히로시마에 35 15만 병력 집결.

          사이고 타카모리(最後隆盛;saigo takamori)가 참모.

          카츠카이슈(勝海;katsu kaisyu)의 설득에 의해 사이고는 개전 회피.

          세불리를 느낀 조슈 내 양이파 숙청에 의한 속론파 득세,

          사이고가 제시한 항복조건을 조슈가 받아들여 12월 회군함.

 

186512월 조슈 타카스기 신사쿠, 코오잔지(;koujanji) 거병, 속론파 타도 및 막부 타도로 돌아 섬

          조슈의 양이파 득세, 항복조건 불이행에 따라 막부 강경파가 2차 조슈정벌 추진함.

          안세 개항조약에 따라 효고항 개항하라고 4개국 연합합대 효고에 접근,

          조정이 칙허 없이 효고항 개항을 결정한 노쥬를 파면하는 이례적 사태 발생함.

          요시노부가 효고항 개항은 연기하는 내용으로 공론을 모아 조정 칙허를 받음.

 

          이렇게 돌아가자 사츠마 번은 막부에 비협조적인 태도를 보이기 시작, 역으로 조슈와 연합 추진,

          사카모토 료마, 그리고 같은 토사번 나카오카 신타로(中岡慎太郎;nakaoka shintaro)가 활약 개시함.

 

1866 1샷쵸동맹(薩長同盟;sacchoudoumei) 체결 ß 여기 참석한 인물들이 메이지 유신의 주역

          2월 막부, 2차 조슈정벌 발령, 6월에 개전하나 군대 정비한 조슈에 막부군 연전연패

          7월 쇼군 이에모치, 오오사카성에서 병사, 15대 쇼군 요시노부 취임, 조슈와 정전협정 체결

        12월 코메이 천황 사망, 무츠히토(睦仁;Mutsuhito)친왕 (나중의 메이지 천황) 취임

 

18675월 교토의 4후회의(会議),

               시마즈 히사미츠, 마츠다이라 요시나가, 다테 무네나리, 야마우치 요도 4명이

               조슈. 효고항 개항을 주제로 토의했으나 요시노부의 정치력에 말려 제후들 힘을 못 씀.

               결국 요시노부가 효고항 개항의 칙허를 얻어냄으로써 주도권을 확립함.

 

            이 때부터 조슈, 사츠마는 무력에 의한 막부타도 외는 방법이 없다고 깨닫고 여러 번을 접촉,

            반면 토사 번의 사카모토 료마, 고도 쇼지로(後藤象二郎;gotou shoujiro) 등이 야마우치 도요에 진언,

            대정봉환(천황에 위임 받은 정권을 막부가 천황에게 다시 바침)을 추진함.

 

       1013일 요시노부가 대정봉환을 선언함. 조정에 14일 받아들여달라고 요청.

       1014이와쿠라 토모미(岩倉具視;iwakura tomomi), 막부타도 밀칙을 손에 넣음. (한발 늦음)

                    한편 요시노부는 대정봉환 선언 이후에도 관직 등 구체제 그대로 두고 개김.

 

       12 9왕정복고의 대호령 발령, 막부 체제 없어지고 신정부 수립이 선언됨.

                   그날 밤 요시노부, 야마우치 요도 등을 이와쿠라 토모미, 사츠마가 불러

                   관직 박탈, 영지 반환 통보. 야마우치 요도가 격렬 반발했으나 위협에 관철됨.

                   (御所;kogoshou)회의 

 

                   이것을 전후, 사츠마 번사들이 에도에서 소동을 일으키고 이에 울컥한 막부가

                   에도 사츠마 번저를 불태우는 일이 발생함. (막부를 발작시키자는 사츠마의 술책설)

 

1868무진(戊辰;boshin) 전쟁.

          금어기(;nishikinohataka)를 앞세운 신정부군이 관군, 그에 맞선 막부군이 역적이 되어 버림.

 

          1토바후시미(鳥羽伏見;tobahushimi) 전투에서 막부군 패퇴. 요시노부 에도로 도주.

          에도의 요시노부가 공순근신을 표명, 카츠카이슈와 사이고 타카모리 담판, 에도성 무혈개성

          불만을 가진 막신들이 탈주, 북관동에 집결, 저항했으나, 우에노 전쟁, 1일만에 진압됨.

          이후 아이즈, 아키타 전쟁이 격렬히 벌어지지만 신정부군 승리.

 

1869 5월 하코타테(函館)에서 막부파 항복.

          이 전투에서 신센구미 부장 히지카타 토시조(土方歳三;hijikata toshijou) 사망.

          이로써 2년 간에 걸친 내전 끝남. (무진전쟁 종료)

 

1871폐번치현(廃藩置県;haihanchiken). 메이지유신의 시기를 아래 사건까지 보는 여러 설이 있음.

 

1877서남(西南;seinan) 전쟁 ; 일본 최후의 내전

 

1885년 내각체제 발족

 

1887년 메이지헌법, 입헌체제 확립

 

***

 

나로서는 2007프로파겐더를 작성했을 때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 깊이로 에도 말의 일본 역사, 격동기라고 불리는 메이지 유신 전후를 들여다보는 좋은 기회가 되었다. 무수한 인물, 일본의 근대를 만든 이들이 등장하는 바, 이건 걍 드라마요, 왜 일본 남자들이 사극 하면 전국시대와 에도 말 격동기를 꼽는지 개략 가늠이 된다.

 

에도시대, 1600~1860년의 260년 간 나라 문을 닫고 태평성대에 찌들은 일본을 뒤흔든 것은 1853년의 페리 내항이다. 당시 국가 방침은 쇄국. 페리의 요구는 개국. 통상으로 돈을 벌어보자는 거다. 여기에 어떻게 응할 것인가? 이제부터 일본에 사는 인간들은 크게 3가지 유형의 길을 걷게 되리라. 이건 2004 NHK 대하드라마 1화에서 페리가 끌고 온 흑선 4채를 바라보며 사쿠마쇼잔(佐久間象山;sakuma syozan) 이 읊는 대사이다.

 

1.     막부파

2.     존왕양이파

3.     3의 길

 

이 세 부류의 세력이 부딪히고 소통하고 때로 힘을 합치고 배신 때리는 과정이 15년 간 이어지는 거다. 너무 길어졌으니 다음 글에서 각각 노선을 대충 설명하고 소설을 따라가고자 한다. (2009.07.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