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까락 운동/감상문

관료들의 여름 (官僚たちの夏, 2009)

섬그늘 2009. 11. 14. 17:16

 

TBS의 2009년 3분기 드라마 (일요극장), 간만에 어떤 게 있나 싶어 드라마 목록 (오렌지화일, 일본드라마넷)을 살펴보다가 허걱...싶어 잽싸게 다운로드, 한 달음에 봤는데 역시나 물건이었다. 이 드라마, 초강추 되겠다. 아마도 NHK의 '하게타카'와 쌍벽을 이룰 정도의 작품성. 오랜만에 별점 5개에 해당시킬만 하매 뿌듯하다. 장하준 교수의 시리즈 저작 '사다리 걷어차기', '나쁜 사마리아인들'을 읽은 이라면 더더더욱 강추.

 

목록 살펴보다가 허걱...했다는 것은, 출연진 면면이 장난이 아니게 호화롭다. 이 정도 연기파 주조연들을 어찌 모았을까 싶을 정도. 일본드라마 꽤나 본 이라면 아래 그림만 봐도 뭔가 확 들어올 것이다. 간만에 각본과 연기가 어우러진 작품을 본 게다. 내가 점수를 후하게 주는 것은 보는 이로 하여금 뭔가 생각하게 하는 저작이기 때문이다. 평소 품고 있었던 의문이 드라마의 장면에 투영되어 대화하게끔 만든다.

 

 

 

 

일본드라마넷 리뷰 : http://www.ilbondrama.net/bbs/board.php?bo_table=review_01&wr_id=99352#c_99355 

(훌륭한 리뷰. 다만 주인공 이름 風越은 '후에츠'가 아니라 '카자코시'라고 읽더라.) 

 

드라마의 배경은 1955~1970년. 태평양전쟁 패전 후 일본 산업이 재건, 부흥하는 과정에서 통산성 관료들이 어떤 생각과 로직으로 일했는지 (작위적인 호들갑이 있지만 차치하고) 생생하게 그리고 있다. 내가 이 드라마에서 얻은 것 (드라마의 미덕) 을 정리하면 아래와 같다.

 

1. 전후 일본 경제사의 흐름을 가늠할 수 있다.

 

일본이 '개발도상국'이던 시대, 국제통상파와 국내산업 보호파의 대립이 이어진다. 무역자유화에 대비하여 국내 산업을 경쟁에 노출시켜 체력을 길러야 한다는 국제파의 주장, 아직은 이르다, 체급이 다르다, 보호하여 내실을 다지고 개방해야 한다는 국내파의 주장이 맞선다. 이거 꽤 음미하며 볼 만 하다. 둘 다 일리가 있거든.

 

드라마는 매화 마다 주제가 있다. 특히 초입의 자동차, 컴퓨터 산업을 보는 시각에서 국제파와 국내파의 주장이 극명하게 갈린다. 어느 세월에 기술을 발전시켜 자동차를 만들 거냐, 차라리 외제(주로 미국) 승용차를 수입해서 쓰는 것이 싸게 먹힌다는 국제통상파. 자동차가 되면 4만개 부품 (실제는 30만개란다)에 관련되는 중소기업이 먹고 산다, 시간과 돈이 들더라도 육성해서 국산자동차를 만들어야 한다는 국내산업파.

 

극중 아케보노자동차는 아마도 토요타가 모델일 것이다 (드라마의 스폰서이기도 하다). 당시 대장성을 비롯한 정부 부처가 회의적이었지만 통산성이 적극 밀어주어 부도 위기의 회사에 자금을 대 주고 키워줬다니까. 일본 역시 성장기 초입에 자국산업을 키울 시간을 벌기 위한 보호무역의 역사가 있는 거다.

 

미국의 통상 압력에 대해 극중 주인공 카자코시가 줄창 하는 말, '너무 불공평한, 체급이 고려되지 않은 게임'이다, 미국인들 제로부터 만들어 일으킨 산업 아닌가? 일본에도 시간을 줘야 한다는 항변에 미국 바이어가 언제까지 그래야 하는데? 가 극의 두 가지 로직을 형성하며 매번 부딪힌다.

 

2. 연기가 된다. 악역이 없다.

 

주조연급을 망라하여 출연진의 연기가 된다. 개성 만점이요, 저마다 다른 가치관이 부딪히며 정반합을 이루는 과정이 어색하지 않다. 총 10화에 많은 것을 담느라 로직이 구체적이지 않은 점은 거슬리지만 (극중 인물들이 위의 보호/개방의 당위를 주로 언명, 구체적으로 언제까지 어떻게 하자는 실행 방안은 보여주지 않는다. 이건 아마 자본주의 민방드라마의 한계일 터. 더 깊이 들어가면 시청률은 오히려 떨어질 게다).

 

예로써 국내산업파의 주장, "이대로 가면 아직 걸음마 단계의 국내산업은 꽃을 피우기도 전에 말라 죽는다. 일본을 미국의 산업 식민지로 만들 셈이냐?" 국제통상파의 주장인즉 "경쟁에 노출되어야 체력이 커지는 법이다. 언제까지 우물안 개구리 처럼 국내산업만 보듬을 참인가?" 즉 양쪽 주장은 선언적 언명이 대부분이며 언제까지 어떻게 보호(개방)하겠다는, 산업별 특성과 현 위치에 기반한 청사진이 내가 바라는 만큼 제기되지는 않는다.

 

극중 큰 줄기를 이루는 대립세력의 수장인 카자코시와 타마키는 통산성 동기인데, 타마키의 대사가 인상 깊다. "우리는 같은 목적을 위해 매진했다, 다만 그 길이 달랐을 뿐." 거의 모든 유형의 드라마 초입의 갈등, 대립은 뒤로 갈수록 화해와 이해로 수렴한다. 이런 설정이 극중 녹아 있는 사무라이 정신, 내셔널리즘 (이 역시 일본의 민방드라마인지라 당연히 넣을 코드)의 폐해를 상쇄한다. (극중 마키의 거동, 행동 원리도 눈여겨볼 만 하다)

 

3. 경제성장의 그늘을 다룬다.

 

자본주의 경제성장의 그늘이라면 공해와 소외가 있다. 근데 이게 강자를 열망하고 자유경쟁에 경도된 이들에게는 유쾌하지 않는 소재일 수 있는데 이걸 다뤘다는 데 이 드라마에 가산점을 주고 싶다. 성장일변도를 추구하던 국내산업파도 심각성을 깨닫고 통상파와 머리를 합쳐 대책을 숙의하는 장면. 그 와중에서도 자파의 입지를 살린 논리개발, 그 로직들이 부딪히고 현실에서 구현되는 과정이 볼 만 했다.

 

소외된 약자란 경제성장과 무역개방의 파도에 휩쓸려 희생되는 소수를 보는 눈이다. 석유수입 증가에 따른 탄광산업, 가트를 달래기 위한 섬유산업 개방 따위. 국내산업파는 이걸 지키려 분투하는데 인물 중심으로 전개되어 과정과 로직, 결말이 선명하지 않은 것이 흠이다. (폼은 난다만, 그래서 어떻게 되었는데?를 보여주지 않는다)

 

4. 미국은 일본에게 무엇이었는가?

 

지금은 상상하기 어려운, 당시 산업을 견인하는 처지의 통산성 관료의 미국에 대한 반감이 화면 가득히 절절하게 넘치며, 로직과 언동이 명쾌하다. 베트남전쟁을 전후하여 일본이 미국과 벌인 영토반환 협상(오카사와라 제도, 오키나와 군도)을 둘러싼 미국을 보는 시각, 대를 위해 소는 희생할 수 밖에 없다는 가치관 (또는 자기합리화), 그걸로 괜찮겠느냐? 반문하지만 현실적 대안이 별로 없다는 정도로 당시를 재현한다.

 

기실 대안이 없다는 것은 무책임한 말이다. 어차피 가 보지 않은 길 아닌가? "섬유산업을 보호하자고 버티다가 오키나와 반환협상이 결렬되면 네가 책임질래?", "영토반환을 위해 일부 산업은 희생할 수 밖에 없다고 백성들에게 떳떳이 이야기할 수 있습니까?" 두 언명 모두 미래를 알지 못한 채 현실에서 최적점을 모색해야 하는 처지의 답답함이 녹아 있다. 그리고 논리를 개발하여 붙이면 훌륭한 전략이 되어 버리는 공통점이 있다. 즉 하나마나한 말이지만 최선을 다했다는 포장이 얼마든지 가능한 게지.

 

***

 

이 드라마를 보면, 1964년 10월10일 열린 '아시아 최초' 동경올림픽이 당시 일본인들에게 어떤 의미였는지 가늠할 수 있다. (근데 내게 있어 '88올림픽'이 그 정도 감격적인 일이었는지?) 지금도 동경을 관통하고 돌아가는 '수도고속도로'를 그 때 만들었다지. 티브이, 자동차, 컴퓨터 등 기간산업을 육성하는 추동력이 되었다는 게다.

 

끝나는 부분마다 '이 드라마는 픽션임다'는 안내문구가 뜨긴 하는데, 상당히 실존 인물을 소재로 삼은 것으로 나는 추정한다. 따라서 초록은 이 정도로 보관, 두고두고 당시 상황을 검색하여 붙일 생각이다. (2009.11.14)

 

지인과 점심을 먹으며 이 드라마 괜찮더라고 거품을 물며 이야기했더니, "그거 석 달 전에 네게 추천했더니 너는 별 관심없다고 했었어"라며 뜨악한 반응. 고도성장기 배경의 드라마라는 말에 티지근했더란다. 엥? 그것 참... 전혀 기억나지 않으매 이 또한 진기한 체험이다. 아츠히메에 푹 빠져 있어서 막말배경의 드라마만 눈에 들어왔었던지? 알 수 없는 일이다. 

 

현재 넷에 돌아다니는 화일은 자막(*.smi) 화일의 싱크가 어긋나서 장면 보다 늦게 출력되는 것이 3화 정도 있어 아쉽긴 하지만, 내용을 따라잡지 못할 정도는 아니다. (2009.11.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