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까락 운동/일본군 위안부

와다하루키, '위안부 문제의 해결을 위해'

섬그늘 2016. 1. 17. 12:09

사진 출처 : Jingoo Cho님 페이스북

https://www.facebook.com/jingoo.cho/posts/916486375072529





나는 '위안부' 중 조선인 비율이 얼마나 되었을까, 알고 싶었는데 그건 일본인 비율이 높지 않았을까 하는 일본인 지인의 말을 들은 바 있기 때문이다. 그는 중국의 위안소에서 일본인 비율이 60%였다는 사례를 들었다. 

 

최근 참고할 만한  자료를 봤는데, 그건 조진구님께서 소개해주신 와다하루키의 최신작 '위안부 문제의 해결을 위하여'의 서문이다. 그는 '위안부' 문제에 관심을 갖게 된 경위로서 아래 문헌을 인용한다. (사진 링크)

 

    '일본 조선 중국 3국의 인민연대의 역사와 이론' (1964, 일본조선연구소)

 

"일본제국주의자는 매춘제도의 가장 저변에 조선여성을 대량으로 던져 넣었습니다. 특히 군대를 상대로 하는 위안부제도야 말로 가장 야만 오욕으로 가득찬 것이었습니다. 그것은 한 명의 위안부가 열을 지어 차례로 밀어닥치는 50명의 천황제 일본 병사를 하루에 상대하는 것을 원칙(norma)으로 하는 제도였습니다. 그것은 조선 본토 뿐 아니라 만주, 중국, 남방에서도 우리 '황군'의 모든 전선에 '위안부 부대'로서 배치되어 있던 것입니다.  그 중 80%가 강제적으로 끌려 온 조선 여성이었습니다."

 

"게다가 이 위안부 부대에 대해서 적어두지 않으면 안될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황군'이 패전, 퇴각할 때 이들 위안부를 현지에 버려둔 것은 오히려 좋은 편이었고 한번에 몰아 죽여버린 것이 대부분이었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하여 일본제국주의의 가장 지저분한 부분이 지상에서 자료도 증거도 남기지 않고 말살된 것입니다."

 

'일본조선연구소'가 어떤 단체인지 모르지만, 1964년 기록이라면 참조할 가치가 있겠다. 내 눈을 끈 데이타는 80%, 50명, 살해당한 이가 '대부분'이라는 것. (2016-01-17)


넷 검색에서 '일본조선연구소'를 찾으니 '현대코리아'로 명칭을 바꿨고 지금은 전자판만 간행한단다.

위키 : 현대코리아 (https://ja.wikipedia.org/wiki/%E7%8F%BE%E4%BB%A3%E3%82%B3%E3%83%AA%E3%82%A2%E7%A0%94%E7%A9%B6%E6%89%80)


근데 중심인물로 보이는 佐藤勝巳라는 이의 행적이 아리송하다. 1960년대에는 일본인으로서 재일한국인의 권익을 옹호하며 일본의 허물을 가열차게 비판했고 '북송사업'을 지지, 역할을 한 바 있다. 그 이후 (그걸 후회하며) 북한을 가열차게 비판하고 일본이 과거사를 사과할 필요 없다는 논지를 표명해온 것으로 보이는데 2013년 작고했다.


http://blog.livedoor.jp/bbgmgt/archives/1005956582.html


따라서 일본의 과거 만행을 부각하기 위해 사료나 근거 뒷받침 없이 적은 표현일 수 있겠다 싶다. 위 저서의 참고문헌을 직접 보기 전 까지는 '이런 자료가 있었다' 정도로 이해하는 것이 좋겠다. (2016-01-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