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까락 운동/일본군 위안부

주전장 (主戰場;The Main Battleground of Comfort Women Issue)

섬그늘 2020. 5. 30. 18:04

등장인물 링크

토렌트 링크 (SBS방영분 2020-03-01?)

감독, 각본 미키 데자키

총괄 프로듀서 미키 데자키 & 모모코 하타

프로듀서 강명석, 전현정

 

주전장 1080p.mp4.torr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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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우 흥미롭게 봤다. 아마도 감독이 이 영화를 만든 동기는 자신이 일본 우익의 공격에 당해봐서였을 게다. 그리 길지 않은 시간이었을 텐데 결론 부분의 통찰 (아래 감독의 당부 부분)에 도달한 것은 경탄스럽다. 이 영화에서 내가 유심히 본 것을 녹취, 아래와 같이 타자 운동을 했는데 왜 그랬는지는 페이스북 (링크)에 적었다.

 

***

 

책임-(01:34:39) 이 문제에대해 일본 정부가 '법적 책임'을 져야 한다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일본이 당시 존재했던 법률을 위반한 것은 아니었으니까요. 당시 합법이었던 것에 대해 책임을 추궁하는 것은 불가능하죠.

 

감독의 반론-(01:35:00) 케네디 씨처럼 일본군 '위안부' 제도가 완전히 합법이었다고 수정주의자들은 믿는 경향이 있다. 왜냐하면 당시 일본에는 공창 제도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당시 일본의 형법226조에 의해 여성의 국외 인신매매는 금지되어 있었다.

 

  226조 소재국외에 이송할 목적으로 사람을 약취하거나 유괴한 자는 2년 이상의 유기징역에 처한다.

  226-2 사람을 산(買い受けた) 자는 3개월 이상 5년 이하의 징역에 처한다.

 

수정주의자들은 한국과 대만과 같은 식민지에는 이 법이 적용되지 않는다고 주장한다. 그렇다면 당시 국제법과 국제 조약의 위반 여부를 확인해 볼 필요가 있다. 앞서 언급했듯이 일본은 1921년 국제 여성 아동 매매 금지 조약을 위반했다. 21세 미만 미성년자의 모집 유괴나 감언을 빌미로 한 강제징집을 금지하는 내용이다.

 

그러나 일본 정부는 식민지의 경우 이 조약에서 제외된다고 주장한다. 국제법 전문가들은 일본군 '위안부' 제도가 도쿄에서 계획되었다는 것, 여성들의 운송수단으로 일본 선박이 이용되었다는 것, 일본 군인들이 관련되었던 것에 근거하여 한국인 일본군 '위안부' 문제는 적용 대상이라고 했다.

 

또한 1930년 일본은 여성의 강제 노동을 금지하는 국제노동기구(ILO)의 강제 노동 조약도 비준했다. 일본은 '긴급사태'라는 명목으로 ILO에 면책요구를 했으나 ILO위원회는 다음과 같이 결론지었다. "일본군 '위안부' 문제에서 긴급의 진정성은 찾을 수 없다. (Comfort women failed to meet the requirement for genuine urgency)" 

 

마지막으로 일본은 1926년 노예제 조약에는 비준하지 않았으나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이 협약은 이미 관습법으로 확립되어 있었다. 즉 비준의 유무에 관계 없이 모든 국가가 지켜야 할 국제규범이었다. 다시 말해, 일본군 '위안부'라는 제도 하에 '위안부'들은 '전적인 통제 (total control)' 하에 있었고 일본은 국제 조약을 위반했다는 결론에 이르게 된다. 따라서 일본군 '위안부' 제도가 당시 완전히 합법적이었다고 보기 힘들다.

 

감독의 당부-(01:59:35) 일본군 '위안부' 지지자 분들께 한 가지 말하고 싶다. 최악의 이야기 혹은 다음과 같이 과장된 숫자나 나이에 초점을 맞추는 것 (우리는 여성에 대해 언급하지만 그들은 아주 어린 소녀, 어린 여성들이었습니다. 8세에서 10세에 불과한 어린 나이였습니다.) 이것은 일본군 '위안부' 제도가 전쟁 범죄라고 증명하는데 필수불가결한 것은 아니다. 이것은 일본군 '위안부' 문제에 대한 일본 우익들의 주장에 박차를 가할 뿐이며 동시에 일본인과 공감대를 형성할 기회를 박탈시킨다.

 

(2020-05-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