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은 반어법이다. 나는 초등학교에서 영어 시간에 영어로만 수업하자는 발상에 반대한다. 단위조직에서 회의를 영어로만 진행하자는 제안에 치를 떤다. 공공문서에 한자한글 병기를 하자는 소리에 코웃음친다. 대한민국 수도권 근처에 영어마을이 생겼고 장사가 무쟈게 잘된다는 뉴스에 절망한다. 토플을 거쳐 회사 인사고과에 토익 점수를 우선하는 제도에 을씨년스럽다. 왜 그 짓을 하느냐, 왜 그렇게 사느냐 묻고 싶다.
이 주제로 글을 시작하매 심히 곤혹스럽다. 이거 파고 들면 한국사회가 갖고 있다고 내가 판단하고 있는 문제점들이 고구마 줄기 마냥 줄줄 딸려나와 수습이 안 될 거거든. 대충 키워드만 늘어 놓아도 성장제일주의, looser의 정의, 약자 소외, 차별, 집단주의, 친미 사대주의, 교회냐 기업이냐, 경쟁력, 인적자원부, CEO 대통령, 학벌주의, 채용시스템, 인사정책, 하나를 보면 열을 안다, 순수자본주의,...
우선 내 이야기부터 하자. 나, 영어 잘 못한다. 사는데 지장? 별로 없다. 내 영어 '실력'? 5년 전 토익 점수가 880점 정도. 점수만으로는 썩 높다고 말하기 어렵지만 형편무인지경 역시 아닐 거다. 근데 미국 아저씨들이랑 영어로 대화하라고 하면 무쟈게 불편하다. 마냥 버벅거리거니와 맘껏 지껄이질 못한다. 차라리 시방은 일본어로 야그하는 게 편하다. (이거이 내가 일본어를 잘 한다는 뜻은 물론 아니다.)
지금은 일본이 생활의 중심이지만 5년전엔 어떤 사업을 맡아 전 세계를 대상으로 상품을 팔러 댕겼다. 한국, 일본, 대만, 동남아, 유럽, 미국, 영국...이른 바 산업선진국이 타겟인 제품이었는데, 그 정도 영어로 물건 파는데 지장은 그닥 없었다고 판단한다. 물론 내 영어 구사능력이 원어민 수준에 근접할수록 보다 실적이 좋았을 개연성은 있다. 글치만 그 개연성 때문에 영어에 온몸(^^)을 투자하긴 억울했다는 야그. 세상에 얼마나 다른 즐거움과 추구해야 할 가치가 많은데 헤필 영어에 목을 매느냐고요...
그 과정에서 내가 확인하고 다듬은 신념은, 가장 중요한 것은 의사소통 능력이라는 것이다. 따질수록 '의사소통'은 흐벅지게 범위가 넓은 물건인데, 언어는 그 일부분이며 필수가 아니다. 정작 중요한 것은 상대가 필요로 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파악하고 내가 그 필요를 채워줄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 가장 근접한 해법을 찾아내는 것이다. 우선은 이쪽의 제품 품질이 좋아야 하고 상대가 원하는 가격을 맞춰줄 수 있는 가격경쟁력을 (경쟁사 대비) 가져야 하며 무엇보다 상대의 이익이 되는 길이 있음을 진정을 다해 알리는 것이 핵심이다.
이러한 일련의 의사소통을 실현하는 기술(skill), presentation, negotiation, language, 그리고 온갖 지식, 제품지식, 고객지식, 시장지식, 상대국가의 문화, 역사, 내 나라의 뿌리, 인문 소양...중에 언어 역량은 일개 구성요소이다. 기본이 안되어 있는데 말만 잘 한다고 사 줄까? 비지니스란 뒤통수 맞을 염려 없다고 상대가 판단하도록 신뢰를 쌓아야 하며 상대를 만족시킬 솔루션을 갖고 진정을 다하는 게 우선이다. 말은 버벅거려도 다 통한다. (특히 유럽, 서로 삐걱거리면서도 할 말은 다 한다.)
본격적으로 그렇게 돌아댕긴 것이 4년 남짓인데, 내가 체험한 것은 그리 부딪히며 내 영어 회화 수준이 비약적으로 발전했다는 거다. 그 이전엔 문법영어, 즉 주어 술어 완전한 문장...버벅버벅...아예 말도 못하는 버젼이었던 거이 걍 입에서 기어나오는대로 말하게 되더라는. 물론 문법은 엉망인데 뜻이 통하고, 조금 불안하면 나중에 짚어보는 절차를 자연스레 밟게 된다. 그 결과 내가 얻은 결론은, 기본IQ만 되는 이라면 일을 맡기면 다 한다는 거다. 필요하면, 아쉬우면 지가 영어를 나름대로 익힙니다, 그리고 외국어는 부딪히고 깨지며 익히는 거이 가장 빠르고 오래 갑니다...라고 나는 주장한다.
이제껏 읊은 걸 요약하면,
1. 경쟁력을 구성하는 요소는 무지 많다. 제품 품질, 가격경쟁력, 신뢰, 제안서 기안, 협상스킬, 상대와 나를 알 것 (이거이 무쟈게 방대한 영역)...세일즈맨의 언어 능력은 그 중 하나이다.
2. 처음 언어구사능력은 생기초만 되면 문제 없다. 나머지는 맡기면 지가 아쉬워서라도 한다. 원어를 접하고 구사할 기회에 비례하여 그 능력은 단계 점프를 하게 되어 있다.
그럼 대학은, 기업체는, 어떤 '인재'를 뽑아야 하나? 누가 물어봤냐만 내게 묻는다면 나는 '싹수 있는 이'를 뽑는 거이 바람직하다고 답한다. 싹수란? 자신과 세계에 대한 지적호기심이 충만한 이, 오류로부터 해방된 자아를 추구하는 이, 논리적 정직성을 갖춘 이, 의사소통이 왜 어려우며 사람의 인식이 어느 정도 나약한지, 최악을 면하려면 어떻게 할 것인지 고민하고 해법을 함께 끈질기게 모색할 자질이 있는 이, 자아 성찰이 가능한 이, 긍정적 에너지가 넘치는 이...면 족하다. 대학이나 기업체는 그런 이를 뽑아 더 성장하도록 북돋을 책임이 있는 바, 똘똘한 넘 뽑아 바보 만들기 다반사는 아닌지 반성할 일이라는 거다.
1960년부터 1990년 까지, 성장제일주의로 점철된 한국사회에는 위에 내가 읊은 인재상이 적절하지 않았다. 이른바 선진국들이 먼저 거쳐간 하부구조 산업을 따라가기 바빴거든. 그 산업에는 규격화된 '인적 자원', 규율, 자본, 기술 도입만 있으면 큰 문제 없었다. 그러니 학벌, 조직 순응 기질, 관상 따위만 봐도 성장은 가능했지. 글치만 OECD 가입해서 국가총생산량 세계12위에 시절이 하수상하야 글로벌리제이션 무한경쟁에 허덕이며 뭔가 부가가치를 조금이라도 딴 넘들 보다 먼저 도모해야 하는 작금 대~한민국의 인재상이라면 달라져야 한다는 것이 내 주장이다.
위에 나열한, 내가 '싹수'로 여기는 자질 리스트에는 토플이고 토익이고 나발이고 없다. 그딴 건 대학 들어가서, 기업체 입사해서 해도 되는 거야. 대학이나 기업체가 개체 성장을 지원하고 장려하는 수단으로 행할 것들을 왜 들어올 넘들에게 요구하나? (물 건너 대학 가서 웬간히 따라가려면 기본은 되어 있어야겠지. 그래서 그 동네가 토플점수 보자고 하는 건 이해해. 근데 한국대학에서도 영어로 수업하냐?) 이건 채용/선발 시스템 품질이 엉망인 탓이리라 나는 생각한다. 인사담당자들이 게으르다고 말하기도 딱한 거이, 보고 듣고 배운 게 그거 밖에 없는 걸 뭐. 그리고 (한국이면) 남들도 다 그렇게 하잖아?
여기까지, 나는 '국가경쟁력'과 영어는 별 상관 없다고 거품 물었다. 그노무 경쟁력인지 뭔지에 '직접' 관련되는 넘의 영어는 기본만 되면 일이 맡겨진 후에 알아서 할 일이며 국가가 관여할 일이 아니다. 하물며 '별로 관련이 없'거나 '간접적'으로 관련될 이들까지 왜 초등학교부터 영어로 하는 수업을 겪어야 하는데? 아니, 2030년이 되면 중국이 세계를 제패한다는데 왜 중국어가 아니고 영어지? 아, 애초 발단은 영어 사교육비를 국가가 줄여주겠다는 갸륵한 발상이었다나 보다. 사교육비라...듣기만 해도 가슴 미어지는 말이다.
너나 할 것 없이 지 자식 좋은(--+) 대학 보내려 하는 것은 상위 5%는 한정되어 있는데 100%가 모두 5%를 갈망하기 때문이다. 왜? 나머지 95%에 속하면 사람 취급을 안해주거든. 그 취급을 원없이 받고 시달린 부모라면 자식은 그 마음 고생 시키고 싶지 않은 거다. 어느 사회건 역량의 대소차가 있어 상위 5%란 존재한다. 미국도 엘리트 2%가 꾸려가며 나머지를 멕여 살린다잖아? 나머지 98%, 좋은(빌어먹을) 대학 아니라도, 아니 대학 진학 않더라도 먹고 사는데 지장 없다. 적어도 명시적으로 놀림감이 되진 않는 존엄을 갖추고 산다. 이런 생기초가 안되어 있는 한국사회의 현실은 과거 압축성장이 낳은 그늘이다. 이 문제를 정면으로 보고 치유하지 않는 한 강남 대치동으로 상징되는 사교육이 없어지는 건 논리적으로 불능이다.
근데 'CEO 대통령'이랜다. 대저 자본주의란 이익을 돌보는 물건이어서 기업체의 CEO는 회사 이익이 안나면 정리해고를 한다. 되도록 인건비 아끼려고 비정규직을 쓴다. 한국 사회 이익이 나지 않으면 누굴 짜를래? 자신이 looser가 된다는 상상 만으로 끔찍한 애들은 더욱 자신의 점수를 돌보고, 앞으로 더욱 초국가 자본이 활개칠 세계화 시대에, 내가 그 이익의 원천이라고 여기는 자라나는 이들의 지적 호기심은 날로 시들어간다. 유학 댕겨와도 일자리 찾기 어렵다니 그럴수록 영어 기본 요구 수준은 올라간다.
자본주의가 신자유주의와 결합하면 돈 있는 넘 더 벌고 없는 넘 더 못살게 된다. 나라가 그렇고 개체도 마찬가지. 온 세계가 애초 체급이 다른 게임을 하게 된 거야 기득권 빵빵한 미국 탓이라고 치자. 그럼 한국 안에서만이라도 스타트라인, 시작점, 기회는 균등하게 줘야 하는 거 아냐? 가난한 학생일지언정 자질이 뛰어나면 좋은(...) 대학 갈 수 있어야...이거야 공자 말씀이고 너나 할 것 없이 5%편입을 갈망하다 보이 그노무 변별력, 기준이 턱 없이 높아지는 거다. 그리 높아지는 기준을 만족시키는 쪽집게 과외, 돈 없이는 못 받지요. 부가 세습되는 골 때리는 나라에서 다수가 살 맛이 날까? 뭐 하자는 플레이냐구요...웬간하면 다수가 행복해지는 시스템을 맹글어야 하는 거 아냐?
대통령은 오케스트라의 지휘자와 같아서 조화를 추구해야 한다. 구성원 너나 할 것 없이 오케스트라에 없어서는 안되는 넘들임을 잘 알기에 제각각 자긍심을 갖고 자기 일에 매진할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 조금 더 잘 한 넘은 제1바이올린, 애초 취향이 다른 넘은 심벌즈, 그 역할에 좋고 나쁘고는 애초 없다. 격차를 줄이고 상대적 박탈감, 망실감을 돌보는 일이 가장 중요한 대통령의 직무라고 나는 생각한다. 그렇지 않으면 말이다...cost performance (같은 돈 들여 얻는 효용)가 무쟈게 낮은 현재 구조는 악화될 뿐이다. 온 나라가 돈 쳐들여 고급인력만 양성해서 실업자 맹그는 어처구니 없는, 비효율적인 사회, 다수의 행복지수가 영 꽝인 사회, 그렇게 비용 헛되이 쓰며 어떻게 나라 이익 극대화하는 CEO가 되겠냐구요...대저 looser를 돌보는 CEO란 없는 법이니 'CEO 대통령'은 형용모순이라는 거다.
정리하자. 학문이나 비지니스 세계에 발 담근 이는 영어 열심히 익힐 일이다. 그렇지 않은 이가 훨씬 더 많겠지? 초등핵교부터 영어 목 매는 거 비용 낭비이다. 영어 잘 하면 물건 잘 팔린다? 항상 참이 아니다. 잘할수록 좋지만 정도 문제이다. 외국어는 경쟁력 구성 요소 중 극히 일부이다. 영어는 기본 정도 하고 목 맬 시간에 다른 요소에 더 신경 쓰는 게 효율이 더 높다. 영어 공용화하면 국가가 잘 산다? 필리핀, 인도의 반례가 있다. 비유를 하자면, 바둑 10급에서 5급까지 실력이 느는 건 쉽다. 5급에서 2급이 어렵고 2급에서 1급 되는 거 무쟈게 골 팬다. 들이는 시간, 노력이 상수가 될수록 증가한다. 영어 역시 마찬가지. 미래에 필요할지 어떨지 모르는 '유창'한 수준을 위해 현재 만백성이 쏟아붓는 시간, 노력이 나는 아깝다는 거다. 결국 에리히 프롬이 주창한 소유 보다는 존재를 귀하게 여기는 사회가 정답에 가까우리라 나는 판단하지만, 이거 겪어봐야 아는 유형이라 앞이 보이지 않는 정글이다.
(2008.0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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