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인권위원회가 고등학교의 성적우수자 반 운영이 학생의 평등권을 침해한다고 결정했다고 한다. 나야 그 결정에 찬성이다. 근데 이 이야기를 하려면 뿌리부터 뒤틀어졌다고 내가 판단하는 한국사회를 또 들었다 놨다 한 바탕 게거품을 물어야 할 터...난감하기 그지 없다. 그래도 삘 받았을 때 정리해 두는 것이 정신 건강 상 이롭기에 순전히 나를 위해 두들긴다.
내 큰 딸 아이 이야기부터 하자. 최근 얘가 고1이 되었다. 일본의 공립학교로 진학했는데 첫 수학 시간에 인수분해 문제를 선생님이 내시길래 풀었더니 반 아이들이 경탄의 눈초리로 쳐다보더란다. 도통 푼 아이가 없더라는 것. 그 학교는 동경의 내노라 하는 애들이 시험 쳐서 들어 가는 곳으로, 한국의 외고에 해당한다. 몇몇 사립고 (나야 애 사립 보낼 처지가 못 된다)와 더불어 이른바 '명문대' 진학률이 높은 곳이다. (일본에서는 '편차치'라는 개념이 있다. 점수가 높을수록 평균 학력이 높다나 어쨌다나.)
어쨌든, 애가 풀었다는 문제를 보니 대충 한국의 중3 수학 수준으로, 그렇게 고난이도는 아니어 보였다. 그렇다면 그거 못 푼 다른 일본 아이들은 덜 떨어진 미숙아들인가? 위에 적었듯이 그럴 리는 없다. 단지 내 아이가 그 아이들 보다 수학에 관한 한 선행 학습이 되어 있기 때문이다. 정확히 말하면 한국의 교과 과정이 일본의 그것에 비해 고등 수학을 비교적 빨리 접하도록 설정되어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내 아이는 중3 때 또래 한국 아이들과 다름 없이 '수학의 정석'을 풀기 시작한 탓도 있다. (웃기는 일인데 나중 두들길 기회가 있겠지. 나는 나이별 발달 단계라는 것이 있기 때문에 선행학습은 애를 망친다는 쪽이다. )
그 인수분해 문제를 내 아이가 풀고 다른 아이들이 못 풀었다고 해서 내 아이가 그 아이들 보다 우등한 인간일까? 그럴 리 없다. 그 수준의 과정을 일본 아이들은 아직 접하지 못한 탓에 불과하며 미래에 어떻게 뒤집어 질지 아무도 모른다. 이 이야기는 한국사회의 공교육이 구조적으로 어떻게 일그러져 있는지 설명할 실마리가 된다. 뭐냐? 한국의 교육 (공교육, 사교육 할 것 없이)은 overspecification(과잉 기준)이다. 목표로 하는 평균 수준이 불필요하게 높게 설정되어 있는 거다.
'높은' 수준은 변별력 때문이다. 대학에 너나 할 것 없이 가고자 하다 보니 헐렁한 기준으로는 모두 통과해서 줄 세우기가 어려워진다. 그래서 기준이 조금씩 올라 가고 시험은 보다 어려워지며 좀 더 어려운 문제를 푸는데 능통한 구성원을 양산하는 구조이다. 모든 수험생이 상위 5%에 들고자 하는 한 이 구조는 깨는 것이 논리적으로 불능이다. 우열반은 이 질서를 더욱 공고히 하는 수단에 불과하다.
그럼 너나 할 것 없이 왜 상위 5%에 들려고 하나? 거기 들지 않으면 사람 취급을 해 주지 않는 사회분위기가 형성되어 있기 때문이다. 나온 대학의 이름 만으로 그 사회에서 그 이가 살아가며 대우 받을 계급이 정해져 버린다. 하물며 대학 나오지 않은 이를 대하는 다른 이의 인식은 상상하기도 싫다. 그것이 바람직한 사회일까? 이른바 실용주의 시각으로 보더라도 심각한 논리적 오류가 내재되어 있다. 왜?
'좋은'(웃기는 말이다만 그렇다고 치자) 대학을 나오면 업무 능력이 있다.
위 명제는 참일까, 거짓일까? 답이야 '모르겠다'이다. 그 대학 나왔다고 뭔지 모르지만 그 업무에 관련된 전문 지식과 소양, 기질을 얼마나 폭 넓고 깊이 습득했느냐 보장할 수 없거든. 좋은지 나쁜지는 모르지만 그 대학 들어가서 판판이 놀고 적당히 학점 받아 나왔다면 그 능력 있을 가능성? 글쎄다. 업무 능력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있는 개인의 특질은 무쟈게 많다. 예를 들어 그 업무가 판매인 경우라면,
1. 긍정적 에너지가 넘치는 넘
2. 관련 지식 (상품, 고객, 시장)을 습득할 지적호기심이 충만한 넘
3. (상대가 무엇을 필요로 하는지 파악할 수 있는) 의사소통 능력이 있는 넘
4. (선이해로부터 되도록 자유로와질) 논리적 정직성을 갖춘 넘
5. (한 두 번 실패에 연연하지 않고 목표에 매진할) 지구력이 있는 넘
따위가 필요한 특질이며, 기업은 이런 싹수가 있는 이를 뽑아 더욱 그 특질을 개발시킬 일이다. 여기 출신대학 이름이 어디 있냐구요...학벌이 좋을수록 위 1~5에 해당될 가능성이 있다는 정도 뿐인 바, '개연성이 사람 잡는다'. 만약 말이다...위 1~5는 넘치는데 한 때 공부에 매진하지 않아서 대학을 나오지 않거나 그다지인 대학 출신인 이가 있다'면' 학벌 우선으로 사람을 고르는 행위는 아까운 자원을 썩히는 결과가 된다. 실용주의 시각으로 봤을 때 이게 타당하냐?
작금 어떤 이가 어떤 대학 졸업자라는 데이타의 물리적 의미는 그 사람이 청소년기에 어느 정도 집중하여 문제풀기 능력을 키웠고 수능 날 운이 어느 정도 좋았다는 것을 가늠할 수 있는 정도이다. 인격, IQ, EQ, 의사소통 능력, 세계관과 별 상관관계를 읽을 수 없는데도 개체를 평가하는 주요 인자로 자리매김되고 있는 현상이 가장 큰 문제이다. 구성원들의 비뚤어진(물론 내 주관적인 표현이다) 가치관이 평가시스템의 부재와 결합해 고비용 저효율의 기가 찬 사회를 만드는 거다.
고비용 저효율이란? 고등학교 졸업할 때 평균 학력을 S, A, B, C 등급으로 두고 설명해 보자. 작금 대~한민국은 빵빵한 S급이다. 이건 딴 나라 애들이 대학에서 배워야 도달할 실력을 애제 고등학교 때 돈 쳐들여 함양한다. 그래 놓고 대학 가서는 하는 일이 기업 입사 시험 잘 치르는 능력 배양인 거다. 원래 대학은 학문을 닦는 곳인데 기업을 위한 인재 양성소가 되어버렸다는 거야. 그런 건 그야말로 분야별 전문지식, 실무 능력 배양이 목적인 college에서 해줘야 하는데, 이 넘의 나라는 대학(university)가 그 짓을 한다.
여하튼 대학에서 기반 기술, 인문학적 소양을 닦는 것이 아니라 산업예비군으로서 능력 배양을 우선시한다면 고등학교 학력 평균이 S급이든 C급이든 결과는 크게 차이 없다. 딴 나라 대학 나와야 도달하는 S급 신입생을 받은 대학이 더 할 일이 뾰족하게 있을 리 없거든. 그러니 취업 준비 시키며 학력을 갉아 먹을 밖에. 그럴 바에야 애제 변별력은 운에 맡기고 헐렁한 C급으로 대학 입시를 하는 것이 더 낫다는 말이다. 적어도 돈은 덜 쓸 것 아닌가? 지금은 그 변별력 때문에 들이는 돈이 엄청난데 변별력 발생시키는 것 이외에는 그 돈의 효용이 도통 별로라는 거다. 돈은 돈대로 쓰면서 애들의 창의력, 지적호기심을 말아 먹는다. 참 바보 같은 짓을 멀쩡한 정신으로들 하고 있는 거다.
요약하자.
1. 이른바 실용주의적 시각으로 봐서, 기업의 경쟁력이 나라의 경쟁력이라고 두자.
2. 기업의 경쟁력은 소수 5%의 창의력에서 나온다. (한국은 달리 유형자원이 없다)
3. 성장기에 씨잘데기 없는 S급 학력을 지향하느라 정작 그 창의력을 애제 말아 먹는다.
4. 왜 돈 쳐 들여 미리 S급 학력을 갖추나? '좋은' 대학 갈 변별력 장벽을 통과하기 위해서이다.
5. '좋은' 대학 가기만 하면 '좋은' 직장 취업해서 평생 잘 살 길이 열린다.
6. 돈만 쳐 들이면 모두 '좋은' 대학 가나? 그거야 아니다.
7. 글치만 다들 하니 내 아이만 안 시킬 순 없다. 이건 세상 탓이지 내 탓이 아냐!!!
다시 말해 한때 (고등학교 때) S급 학력자였던 증명 (=대학 졸업장) 말고 창의력을 갖춘 넘인지 아닌지 기업이 알 수 있는 방법만 있으면 S급 사전 확보는 필요 없다. 작금의 '공교육 실패'라고 불리는 현상은 그 측량 방법, evaluation(평가) 시스템이 형편무인지경이므로 발생하는 구조적 문제이다. 그것만 된다면 출신대학으로 사람을 평가하는 게 우스운 일이 되며 사전 S급 학력을 너나 할 것 없이 갖추느랴 떼돈 들일 필요가 없다.
작금 돈 쳐들여서라도 내 아이만은 S급 학력을 갖춰 변별력 장벽을 통과시키자...는 분위기의 가장 큰 문제는 돈이 없는 넘은 걍 포기하고 looser(실패자)로 평생을 살아야 한다는 데 있다. 부모가 가난하면 아이도 가난해야 하며 신분과 계급은 세습된다. 출발선은 공평하게 같아야 하는데 태어날 때 부터 금테 두른 애가 생기는 거다. C급 학력 기준 줄 세우기였다면 웬간한 대학 들어가고 본인이 하기 나름으로 장학금 받아 그 대학에서 학문을 닦아 국가에 이바지할 수 있는 애가 평생을 좌절하며 사회를 원망하며 그늘에서 살아야 하는 거다. 이걸 제도적으로 조장하는 나라가 건강한 나라일까?
이제까지는 '실용주의' 시각에서 작금의 교육환경이 웃기는 짓거리라고 떠들었는데, '인본주의' 시각으로 넘어가면 더 심각하다. 감당이 안되어 간단히 쓴다. 주연만 있는 영화가 있을까? 사회는 고급학력, 기본학력이 필요한 일자리가 두루 있다. 관리직만 있는 공장은 이미 공장이 아니다. 구성원 모두가 이 사회에 필요한 존재이며, 하기 나름으로 '행인1'도 주연이 될 수 있다. 근데 한국사회는 다수가 그 이의 가능성을 부정하고 짓밟음으로써 애제 긍정의 에너지를 뺏는 병든 사회이다.
대학 나오지 않으면 사람 취급을 안 해주지? 그러니 사회 구성원 전체가 대학 졸업을 희망하거든. 그거 무마하려고 대학 정원을 화끈하게 늘여 놓은지 20년. 근데 그 고급학력자가 기능할 자리의 수는 소수인 것이 정상이겠지? 고성장 시대가 끝나서 자리는 그대로이니 구직난은 필연적인 결과일 밖에. 답이야... '존재'를 사는 것이다. 구성원 다수가 '소유'를 추구하는 한 답은 논리적으로 불능이다.
이런 형편이므로, 위 큰 그림에서 '우열반'이 무엔가? 우열반을 하든 하지 않든 위 구조가 변하는 것은 아니다. 대학 들어가는 이의 학력이 S급이든 C급이든 크게 상관 없다고 거품 무는 내게 무슨 의미가 있느냔 말이다. (S와 C급의 간극의 보충은 대학이 원래 해야 할 일이다)
초롱초롱한 눈으로 흥미진진하게 수학 문제를 들여다 보지 않는 한, (이미 지적호기심을 잃은 한, 싫은 책상이지만 looser가 되기는 더욱 싫기에 마지못해 앉아 있는 한) 수학의 정석을 많이 풀어 웬간한 어려운 문제 푸는 것이 그 아이의 성장에 큰 의미를 주지 못한다. 그 과정을 아직 거치지 않은 이에 비해 그거 거쳐 문제 척척 푸는 아이가 우등하다고 말할 수 없다. 그래서 나는 초등학교 아이가 수학의 정석 푼다고 뿌듯해하는 부모를 측은하게 생각하는 편이다. 근데 내 아이 역시 이미 그 호기심을 잃은 듯, 수학이라면 지긋지긋하다고 하니 한숨이 나온다. (2008.5.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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