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까락 운동/내키는대로

"여성은 남성 보다 열등하다"?

섬그늘 2008. 11. 13. 14:04

일본이나 한국이나 여성은 남성에 비해 사회진출도, 성취도가 낮다. 한국의 경우 기업체 중간 간부의 4% 남짓이 여성이다. 고급학력자가 여성일 경우, 이 '실용주의' 세상에서 왜 그리 푸대접을 받고 있는 걸까? 이 글에서 나는 사회적 약자에 대한 차별이 어떤 구조인지를 보이고 그 구조를 깨달은 이라면 어떻게 사유하고 행동하는 것이 바람직할지 따져보려 한다.

 

   "여자는 남자 보다 능력이 없다"

 

위 명제는 참인가? 안타깝게도 그렇다. 적어도 한국 사회에서는 참이다.

 

왜냐면, 그 명제가 참이라고 믿는 사람의 수가 압도적으로 많은 사회이기 때문이다. 여성이 업무 파트너가 되었을 경우 위 명제를 참이라고 믿는 이들이 주위(상사, 동료, 부하, 거래처)에 있다면, 과제 중심의 동반자 관계가 되기 어렵다. 믿음이 가지 않기 때문이다. 따라서 시간을 들여 업적 다운 업적을 보여 줘야 서서히 변한다.

 

또한 한국 사회는 소주, 맥주, 폭탄주를 매개로 끈끈한 분위기 속에서 함께 망가져야 인간관계의 정서 장벽이 허물어지고 근원적 소통이 시작되는 원시 사회이다. 음담패설에 낄낄거리며 동질성 확인 작업을 거친 후라야 보다 고급 정보가 은밀히 오고간다. 그런 자리에 여성이 끼이면 분위기 서늘한 것이 보통인지라 애제 알아서 사양해야 하며 그런 경로로 얻을 고급 정보는 포기해야 한다. 대개 신뢰할 만한 상대, 그 정보를 준다면 향후 자신에게 도움이 될 만한 대가를 줄 만한 상대로 여겨져야 보다 고급 정보를 접할 수 있다.

 

이미 형성되어 있는 선이해(여자가 별 수 있어?)는 별로 영양가 없는 만남을 지속하게 한다. 그 결과 여성은 조직에서 객체가 되며 겉돌 따름이다. 따라서 업무능력의 절대적 크기가 같은 남성에 비해 같은 업무 성과를 내는데 시간과 비용이 결과적으로 더 들어 가겠지? 지켜보던 이가 그 때 한 마디 한다. "거봐. 내 판단이 옳잖아. 여자는 역시 별 수 없어." 애초 선행되었던 선이해가 합리화, 정당화된다.

 

이런 형편인지라, 한국사회의 단위 조직에 들어간 여성은 자신을 백안시하는 주위 시선에 주눅들 개연성이 있다. 그래서 보다 월등한 능력으로 배 이상의 진정과 노력을 기울여야 평범한 업무 역량을 지닌 남성과 업적을 비슷하게 낼 수 있다. 뭔가 억울하지만 다수의 선이해가 선행되어 있는 이런 사회에 태어난 팔자려니 해야 한다. 뭔가 불합리하지? 따라서 위 골 때리는 구조를 깨달은 이라면 (위 선이해를 갖고 있는 다수와는 달리) 그 구조를 깨는 방향으로 사고하고 행동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즉,

 

1. 자신이 남성이라면

 

위의 구조, 다수의 선이해가 끈끈하게 자신을 옭아매는 구조의 영향을 받지 않는 존재(남성)로 한국사회에 태어난 것을 일단 고마와할 것. 고추 달고 태어난 것이 기득권이라는 뜻. 주위 여성을 동등한 인격체로 대우할 것. 그 여성이 아직 위 구조에 도달하지 못한 상태로 주눅들어 있다면, 또는 다수가 가진 선이해와 다름 없이 자신을 비하하고 있다면, 시간을 두고 인식 전환을 도울 것. 왜냐면 나나 나에게 소중한 이가 위 골 때리는 구조의 희생자가 되지 말란 법이 없기 때문.

 

2. 자신이 여성이라면

 

위 구조를 보다 섬세하게 파 들어가 자신의 눈으로 얼마나 황당한지 확인할 것. 왜냐면 그 작업을 해야 웬간한 일엔 절망하지 않게 됨. 그 과정에서 같은 문제 의식을 갖는 이와 친구 또는 연대할 일. 왜냐면 홀로 도달하는 것은 벽이 강고한 것에 비례하여 어려우니까. 그 후 주체적으로 진정을 다해 세상과 교통할 것. 선이해를 갖고 있다 싶으면 절대 그 이와 적대하지 말 것. 왜냐면 사회 전체와 싸워야 하는 불상사가 생겨서리 당대에는 끝나지 않음. 그런 이에 대해서는 측은지심을 갖고 대할 것.

 

이제까지는 개념적으로 와 닿기 쉽게끔 여성/남성을 대별했는데, 한국 사회에 창궐하는 모든 사회적 약자에 대한 차별이 위의 구조 (다수의 선이해 선행-주눅-역량 발휘 제한-선이해 강화)를 갖는다. 성 차별, 지역 차별, 동성애 차별, 인종 차별, 노동자 차별, 학력 차별...그 소수 그룹에 들어 있지 않은 이는 기득권이라고 할 만 한 바, 위 1의 처지에서 소수자를 볼 일이며 소수 그룹에 들어 있는 이는 위 2의 처지에서 세상을 볼 일이다. 근데 무지 어렵다. 왜냐면 궁극적으로는 사회 다수의 선이해가 교정될 때 까지 이어져야 끝나는 작업이거든.

 

이문열(여성을 능멸한다...고 나는 판단한다)을 대문호로 여기며 존경해 마지 않는 여성, 조선일보를 정론지라고 읽으며 자신이 주류에 든다고 뿌듯해하는 노동자가 현상의 껍질을 깨고 들어가 본질에 닿고 깨달음을 얻어야, 더 나아가 자신이 연모하던 대상이 실제는 그렇지 않다는 말을 듣고 자신의 인격이 개무시당한 것으로 간주하기 보다는 "웅...왜?"라며 검증 작업을 할 논리적 정직성을 갖춰야 위 차별의 구조는 없어질 것이다. 결국은 소크라테스(너 자신이 무엇을 모르는지 알라)를 이해하여야 한다는 뜻이다. (2008.5.27)

'손까락 운동 > 내키는대로' 카테고리의 다른 글

게으름, 세상과 불화하는 삶  (0) 2008.11.13
영업사원은 키가 크다  (0) 2008.11.13
우열반 반대한다.  (0) 2008.11.13
노무현 전대통령에 대한 평가  (0) 2008.11.13
광우병인들 어떤가?  (0) 2008.11.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