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까락 운동/내키는대로

게으름, 세상과 불화하는 삶

섬그늘 2008. 11. 13. 14:17

http://kin.naver.com/detail/detail.php?d1id=11&dir_id=110108&eid=3lIhQ8SoamEfAxVjFcy0vf8nxNn1sajk

 

(지식in의 철학란에, '게으름은 왜 잘못일까?'로 올라온 어느 님과 나눈 문답 (2008.10.27))

 

무쟈게 흥미로운 주제를 올리셨군요. 그 중 마지막 문장

 

           게으름은 왜 잘못일까요? 게으름이란 왜 '좋지 않은 것일까요? 

 

라고 적으셨는데, 왜 게으름이 잘못이요 좋지 않은 것이라고 적으셨을까 의문입니다. 그런 것은 도대체 누가 규정할 수 있는 것일까요? 제게는 그 문장을 "왜 대부분의 사람들이 게으름은 잘못이라고 생각할까요?"로 바꿔 놓는 것이 글의 전개를 위해 편할 듯 싶습니다. 어떤 가치 판단은 대개 많은 사람들의 판단을 쫒거나 교육 받아, 혹은 환경의 결과물일 가능성이 크니까요.

 

저는 님께서 적으신 '게으름'이 어떤 유형인지 알지 못합니다. 그것을 명확히 판별하지 못한 상태에서는 그것이 좋다, 나쁘다 하는 식의 어떤 기술도 의미를 갖기 어려울 겁니다. 저 자신 세상사람들이 대부분 여기는 형태의 부지런한 사람이 아니며 오히려 평균(그런 게 있다면) 보다 훨씬 게으른 사람이리라 판단합니다. 몇 가지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1. 휴일 아침 늘어지게 늦잠을 잔 후 어슬렁 어슬렁 등산을 혼자 떠납니다. 주로 북한산을 가는데, 이 놈의 산은 갈 때 마다 다릅니다. 봄, 여름, 가을, 겨울은 물론이고 그 날의 날씨에 따라, 내 기분의 상태에 따라, 오가는 이들의 표정에 따라, 속력에 따라, 코스에 따라...북한산은 매표소만 수십 개가 있지요. 그러므로 평생 북한산을 매주 오르더라도 같은 풍경이란 접할 수 없다고 저는 생각하고 있고, 갈 때 마다 북한산을 갑니다. 아, 물론 집에서 가깝다는 이유도 있습니다. 먼 곳의 산을 기차 시간 맞춰서 오가는 건 질색이거든요. 마음 내키는대로 코스를 잡아 무쟈게 천천히 걷습니다. 딱히 정상을 밟지 않아도 됩니다. 스치는 사람들의 표정, 초목, 때때로 만나는 꽃 무리, 계곡 물의 흐름 따위 볼 것은 천지입니다. 그러다 가끔 뿌연 도심을 바라보며 왜들 사나? 생각에 잠기기도 하지요.

 

이에 대비하여 전국 산의 리스트를 뽑고 정상을 오른 곳에 표기를 하며 매주 다른 산을 오르는 이도 있습니다. 그 이는 제가 하는 형태의 산행이 못마땅한 모양이어서, 왜 그리 사냐? 라고 말하곤 합니다. 그 이에 비하면 아마도 세상사람들의 잣대로 재었을 때 저는 '게으른' 편일 겁니다. 근데 그 '게으름'이 잘못일까요? 저는 동의하지 '않습니다. 그렇다 하여 제 산행 형태가 바람직하다고 주장하지도 않으며, 매주 계획대로 다른 산을 오르는 이의 삶을 부정할 필요도 못느낍니다. 어차피 삶은 자신이 사는 것이며, 그 삶의 형태는 자신이 꾸려나갈 일입니다. 그 영역은 자신의 것이며 타인이 침범해서는 곤란하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그걸 '게으르다'라고 딱지를 붙이는 것은 폭력이라고 저는 거부하는 것이지요.

 

2. 내키면 책을 읽습니다. 읽고 싶은 책을 골라 재어 두었는데 도통 줄지를 않습니다. 하루에 한 페이지 나갈 때도 있고 아예 읽지 않을 때도 있는데 어쩌다 수십 페이지를 주루룩 읽는 경우도 있습니다. 대개 '철학'이라고 이름 붙인 책들의 경우 도통 무신 말인지 모를 구석이 대부분입니다. 그럴 때는 대충 읽고 다시 내키는대로 디빕니다. 몇 번 읽어도 이해가지 않는다 싶으면 덮어둡니다. 뭐, 살다 보면 다시 읽어 이해될 때도 있겠거니 합니다. 이것 역시 계획을 세워 하루 몇 페이지씩 꼬박 읽고 '몇 권을 독파했다'고 뿌듯해하는 이에 비하면 세상 사람들은 '게으른' 독서 태도라고 말하겠지만 제겐 상관 없습니다. 

 

3. 밥을 먹을 때 저는 초고속으로 목구멍에 쑤셔 넣습니다. 요즘은 반성하고 같이 먹는 이와 이야기도 하는 편인데 그래도 다들 10분을 넘기지 않지요. 이거 건강에 별로라는데, 일본이든 한국이든 대충 때려 먹고 다른 일 보는 데 가치를 두다 보니 그렇답니다. 근데 유럽인들은 대개 밥 먹는 시간이 길어서 저녁의 경우 2시간 이상 걸리기도 한다지요. 여러 코스를 거치며 갖가지 재료의 맛을 음미하며 영화, 정치 이야기 곁들여서 시간 가는 줄 모릅니다. 제게 비하면 그 넘들은 밥을 '게으르게' 처먹는 것이라 말할 수 있을까요? 유럽 애들은 햄버거로 끼니 잽싸게 때우는 미국 애들을 측은하게 본답니다.

 

사람이 사는 목적은 행복을 추구하기 위해서라고 합니다. 근데 재미있는 것은 어떤 것이 행복한 삶이냐? 질문에 대답이 제각각이라는 점이지요. 저는 형편이 되는대로 위 1, 2의 형태는 유지하고 밥은 천천히 먹으며 제게 의미 있는 이들과 이야기하는 시간을 즐기고 싶은 바, 그것이 제가 추구하는 행복이지요. 그걸 달리 하면 보다 행복하다고 생각하는 이야 그리 살면 될 일입니다.

 

문제는 혼자 사는 세상이 아니라는 데 있습니다. 어떤 형태이든 인간관계나 조직에 엮여 보내는 시간이 있지요. 그 시간 만큼은 세상의 기준에 어느 정도 근접하게 부지런을 떨어야 일상생활이 평온합니다. 저 역시 주위에 민폐를 끼치지 않을 정도의 스피드로 일을 처리하는데 주력합니다. 그리고 제 시간은 놀망놀망 (제주도 말로 '천천히') 보냅니다. 그런 터라 타인의 영역을 간섭하기 좋아하는 한국사회에서는 그리 생각하는 이들과 필연적으로 부딪혀 불화를 야기하기 쉬우므로, 미리 제 영역과 사는 방식을 천명해 둡니다. 건드리지 말라는 것이지요.

 

관계를 맺고 유지해야 하는 영역, 즉 같이 살아야 하는 영역과 자기만의 영역을 구분하면 어떤 형태의 '게으름'이라도 허용할 수 있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근데 그런 게으름은 찾기 어려울 겁니다. 예를 들어 어머니가 밥상을 차려줬는데 자느라 밥때를 놓쳤다면 자식이 따끈한 밥 못먹었다고 여긴 어머니 속이 상할 겁니다. 여하튼 님이 제기하신 게으름이 어떤 유형이냐를 먼저 따져보십사 합니다.

 

님이 적으신 게으름이 그저 '불규칙한 생활 양태'를 뜻한다면 그로 인해 얻는 바, 잃는 바를 따져 방향을 선택하실 일입니다. 행복하기 위해서 잃는 것도 있기 마련이니까요. 돈, 명예, 권력 따위 가치를 추구하며 바람 소리를 내는 삶을 사는 이들은 늘어지는 시간과 공간의 즐거움은 잃을 수 밖에 없습니다. 뭔가 문제의식을 느끼셨다시니, 님의 '게으름'으로 인해 잃을 가치가 더욱 소중하냐 않느냐 판단하실 사안일 듯 싶은 바, 관계의 영역과 혼자만의 영역을 나눠 생각해 보십사 하고 싶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