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까락 운동/내키는대로

일본 + 한국 정체성

섬그늘 2008. 11. 13. 14:21

http://kin.naver.com/detail/detail.php?d1id=6&dir_id=61402&eid=ZJ0RfOMFZCMAkYOa48ouKU1jc0LUpamJ

 

(네이버 지식in, 한국 일본 피를 반반 이어 받은 걸 알아 충격이었다는 어느 님의 글을 보고 답함...)

 

고민이 많은 시간을 보내고 계시겠네요. 긴 세월이 지나 돌이키면 그렇게 번민할 필요까진 없었다고 할지라도 겪을 당시는 무척 힘든 법이라더군요. 이건 괴롭다 싶은 모든 시간에 적용되는 말일 겁니다. (사랑도 그렇답니다.)

 

지금은 이해하시기 어려울지 모르겠습니다만, 저는 님이 축복 받은 이라고 생각합니다. 뉘 못지 않는 아름다운 삶을 빠른 시기에 시작할 수 있는 분이지요. 왜냐면, 사회로부터 차별을 받을 가능성이 있는 형질을 자신이 갖고 있다는 사실을 막 깨달으셨기 때문입니다. 아마도 대다수 사람들은 그 구조를 모른 채 머리 비우고 한 세상 즐기다 생을 마감할 겁니다만, 님은 그 이들과는 다릅니다.

 

   사람은 스스로 택하지 않은, 타고난 형질 때문에 불이익을 받아서는 안된다.

 

이 언명은, 가령 그 사람이 여성이거나 흑인이거나 동성애자이거나 특정 지역 출신이거나 장애인으로 태어났다고 해서 기회의 균등을 빼앗거나 차별을 해서는 안된다는 것이지요. 이건 민주사회라면 생기초(상식)으로 여겨야 마땅합니다만 현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아직도 흑인을 위협하는 미국 남부 KKK단이 있고 외국인이라면 집을 빌려주지 않는 일본인이 있으며 홍석천씨의 동성애 커밍아웃은 한국사회에서 화제 만발이 됩니다.

 

민주주의의 본 고장이라는 미국에서 여성도 참정권(투표할 권리, 후보가 될 권리)을 갖게 된 것은 100년 남짓이랍니다. 흑인의 경우 1960년대 격변을 겪으며 투표할 권리가 생겼다지요. 즉, 위에 적은 생기초를 세계 나라들이 형식적이나마 보장하기 시작한 것은 매우 최근의 일입니다. 하물며 민족주의가 대세인 일본이나 한국은 오죽하겠어요?

 

세상 모든 사람들이 위 생기초에 동의하고 실천한다면 차별은 없어질 겁니다만, 그런 날은 오지 않을 것 같습니다. 왜냐면, 그렇게 다름(different)을 틀림(wrong)으로 치환시켜 이익을 추구하는 세력은 어느 시대에나 있거든요. 종교가 다른 이라크에 대량살상 무기 덤터기를 씌우고 엉망으로 만든 후 별로 반성할 기미 보이지 않는 미국 부시 정권이 최근 사례이지요. 한국 말에도 '그 사람은 나와 틀리다'라는 어법이 있는데, 그건 '다르다'라고 써야 맞는 어법입니다.

 

저는 되도록 민족주의 보다는 세계주의자가 되려고 합니다. 세계 경제가 한 권역이 되어 버린 글로벌 시대에 '우리 민족이 제일이야'라는 선민의식으로 무장하는 것은 촌스럽다고 여기지요. (심하면 전쟁까지도 갑니다 - 2차 대전 독일 나치, 지금 이스라엘의 경우) 그런 터라 사람을 그 이의 프로필로써만 판단하지 않으려 노력합니다. 만나 이야기를 나누고 시간을 함께 겪어봐야 하므로 이 바쁜 세상에선 쉽지 않은 일이지요. 따라서 그리 사람의 출신, 학력, 종교, 성별 따위로 그 사람을 평가하고 재단하는 이가 있는 건 당연합니다. 다만 그런 사람의 숫자가 얼마나 많으냐에 따라 일상의 평온도가 좌우되겠지요.

 

이런 터라, 인종 차별을 하는 이는 제 연구 대상입니다. 어떤 환경, 문화의 영향을 받아 그런 사고 방식을 갖게 되었냐는 궁금증이 치밉니다. 대화를 나눠 보면 대개 무쟈게 선량한 사람이지요. 미국 남부의 KKK단원도 대개 백인 고졸 중산층 독실한 개신교도 남성이란 프로필을 갖고 있답니다. 이 사람들이 뭔가 신념에 사로 잡혀 '흑인 씨를 말려야 한다'는 증오와 미움의 노선을 따르게 된 데에는 사연이 있을 거고 저는 '다른 문화를 얼마나 많이 접해 봤느냐'가 관건이라고 생각합니다. 다양한 인종이 어우러져 살아가는 네덜란드의 암스테르담, 미국의 뉴욕과 대비되는 것이지요.

 

님께는, 나중 되고 싶은 자신의 모습을 그려보십사 하고 싶습니다. 제가 님이라면 적당한 때에 일본이든 한국이든 (어느 쪽이든 중요한 선택입니다) 국적을 택하고 뉘에게든 그 사실을 거리낌 없이 이야기하렵니다. 그러다 신기한 눈초리로 보는 이가 있다면 씨익 웃어주는 것이지요. 그 이가 내킨다면 님이 고민하고 나름 읽고 겪어 체득한 '다른' 사람을 보는 법, 다른 문화권과 공존하는 법을 함께 대화할 수도 있을 겁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현재의 고민을 뛰어 넘으려면) 약간의 시간과 독서가 필요하겠지요.

 

서두에 님이 축복받았다고 적은 것은 그 때문입니다. 남들 따분하게 생각하여 별로 입문도 하지 않는 공부(독서)를 님은 나름 절실한 이유로 배 이상의 몰입으로 스스로 내켜 하실 가능성이 높다는 겁니다. 그 과정에서 '사람 잡는 정체성'(아민 말루프 지음, 이론과 실천)을 언제건 읽어보십사 합니다. 사람의 정체성은 프로필로써만 가늠할 수 없다는 것이지요. 님이 원래 어떤 경로로 태어났든 현재의 정체성을 구성하는 것은 성장기 이후의 환경과 겪은 문화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인간과 침팬지 유전자 99%가 같답니다. 본질은 태어나며 얻는 게 아닙니다.) 

 

앞으로 그 과정을 겪으실 겁니다. 남 보다는 배 이상의 치열함과 민감도로 차별의 구조를 이해하게 되시겠지요. 사회적 약자를 따뜻한 눈으로 보고 아직 차별(성차별, 인종차별, 장애인 차별...)을 자신도 모른 채 행하고 있는 이를 만나게 되면 넉넉한 마음으로 그 이의 시작을 도울 수 있을 겁니다. 그 때는 지금의 고민을 돌이켜 보며 의미 있는 아픔이었다고 되뇌실지도 모르지요.

 

'혼혈'(전 이 단어 싫어합니다. '살색'과 마찬가지로 이미 차별어이거든요. 근데 영어식 'half' 이외 마땅한 말이 없습니다.)을 이상하게 여기는 이는 한국 사회에 많습니다. (일본도 남 부럽지 않습니다. 외국인에 대해 무쟈게 배타적이지요. 모임에 끼워주지 않습니다.) 글치만 원래는 그리 이상하게 여기는 이가 이상한 겁니다. 생기초에도 도달하지 못한 유아 수준의 내공이지요. 이 개명 천지 글로벌 시대에 외국인과 상담하며 돌아댕겨 보세요. 그 이의 성장 환경, 문화를 이해하면 쌓지 못할 신뢰관계란 없습니다.

 

저는 일 때문에 지금 일본에 삽니다만, 대부분 사귀는 일본인들은 선량합니다. 이건 세상 어딜 가도 마찬가지일 겁니다. 다만 문제는 전체의 방향을 정하는 일부 정치인과 언론이지요. 그 구조를 들여다 보면 한국도 만만찮습니다. 따라서 일본인은 나빠, 한국인은 훌륭해 따위의 판단은 성립할 이유가 없습니다. 선이해(편견)에 다름 아니지요. 충분히 겪어 보기 전에는 판단할 수 없고, 제 경우 적절한 판단은 평생 일어날 수 없다고 생각하는 편입니다.

 

위에 읊은 구조를 어느 정도 이해하신 후는 자기애(모든 사랑의 뿌리)를 튼튼히 하실 수 있을 겁니다. 이 세상의 중심은 님이며 세계는 그렇듯 자신이 세상의 중심인 사람들 끼리 소통하는 공간이란 것이지요. 세상에 하나 밖에 없는 자신의 존재를 깨달은 다음에는, 그와 똑 같은 가치를 가진 다른 사람의 존재를 소중히 대해 주게 되는 겁니다. 그 과정을 겪고 나면 거울에 비친 님의 모습이 지금 보다는 사랑스러울 겁니다.

 

요약하면, 님은 현재 님의 존재 그대로인 겁니다. 사람의 출신과 혈연이 어떻단들 그 사람의 고유 인격을 만드는 것은 겪은 바 체험과 환경 문화를 자신의 인식이 받아들인 결과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결국 자신의 마음이 자신의 본질을 만드는 것이지요. 그걸 깨닫는다면 세상에 허다하게 많은, 정글처럼 얽힌 선이해(편견) 무더기인 사람들의 인식도 물끄러미 들여다 볼 수 있을 겁니다. 그리 되지 말란 법 없으니 그 수준에 근접할 때를 상상해 보세요. 행여 남에게 알려질세라 노심초사할 일은 아니잖습니까? 걍 님 자신의 일부인 겁니다. 자랑이 될 이유도 없지만 허물 역시 아닙니다.

 

일본인 개인에게 선조가 저지른 잘못을 사과하라거나 미안하게 생각하라고 말할 수 있을까요? 전 별로 영양가 없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그 이가 몰랐다면 역사적으로 규명된 사실(;fact)를 적절한 기회에 알려줄 일이고 이미 알고 있다면 그 이의 인생이지요. 베트남 사람 만나면 일본인이 그리 사과하기를 바라는 만큼의 무게로 한국인은 사과하고 있을까요? 외국인 근로자가 한국에 와서 배우는 첫 말은 '때리지 마세요'라고 합니다.

 

지금 올리신 글에서 님의 자아의 원형이 형성되고 있는 것을 엿볼 수 있었습니다. 자아의 원형은 님 또래에 본격적으로 형태를 갖추기 시작하고 성년을 전후하여 일단 완료, 그 후에 평생 성장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 님 또래의 시기가 인생에서 가장 중요하다고 하는 것이지요. 이 시기에 '나는 누구인가?' (철학의 근원적 질문이라고 합니다. 이거 아는 사람 잘 없습니다. 뭐, 저도 마찬가지.)라는 질문에 부딪혀 여러 생각을 할 계기는 드뭅니다.

 

따져보면 인종의 순혈주의는 별로 말이 안됩니다. 세계 어느 인종의 피가 그리 순결(그 농도는 누가 어떻게 정의한단 말인가)할까요? 한국만 해도 오만 인종의 잡탕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외적의 크고 작은 침입이 5,000건이라나요). 그거 창피하니까 '한민족' 단일민족을 외치는 게지요. 일종의 이데올로기이며 우끼지도 않는 딱지 놀음이라고 저는 부릅니다. 한숨 나오는 것은 그런 멍청한 놀음을 멀쩡한 정신으로 하고 있는 이들이 이웃에 많다는 게지요.

 

마지막으로, 제 딸 아이 이야기를 하겠습니다. 일본 온 지 4년, 올해 고1이 되었는데 4년 전 일본에 올 때는 그렇게 일본이 싫었답니다. 아마 한국에 사는 평범한 초등학생의 인식 그대로였겠지요. 근데 4년 지나 지금 일본의 고등학교에 다니는데 이제는 한국이 그렇게 싫답니다. 그래서 앞으로 4년 지난 후에 다시 이야기하자고 저는 말하지요. 어느 사람이든 특정 시점의 인식은 바뀔 수 있는 겁니다. 물론 계기와 시간이 필요한 일입니다.

 

(2008.10.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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