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까락 운동/내키는대로

성공시대

섬그늘 2009. 12. 4. 22:24

제목은 예전 (찾아보니 1987년이라고 함) 유인촌이 주연이 되어 이명박 연기를 한 드라마라고 생각해서 붙인 건데 알고 보니 그 드라마는 '야망의 세월'이었단다. 글치만 뭐, 제목에서 느껴지는 삘이 그 놈이 그 놈이니 그대로 두자.

작금의 포탈을 보면 '성공'이라는 단어가 꽤 많이 보인다. '성공하기 위해서', 'XXX의 성공 비결'...근데 도대체 '성공'이 뭐하는 물건일까? 이 역시 '상식'과 비슷한 단어로서, 대부분 사람들이 동의하는 개념이라고 전제하면서도 파고 들면 다르게 인식하고 있다는 걸 깨닫게 되는 유형이다. 왜냐면, 대~한민국의 대다수 사람이 '성공'이라고 하는 경지를, 나는 그게 어찌 성공이란 말이냐? 라며 동의하지 않으니까. 

 아마도 대다수의 성공적인 인물상은

1. 한 분야의 정점에 오른 사람
2. 떼돈을 번 사람 (10억? 100억? 1,000억원?)
3. '유명'한 사람, 쉽게 풀어 긍정적으로 이름을 널리 알린 사람

정도일 게다. 근데 내가 생각하는 '성공적인 인생'은 '자신이 이루고자 하는 바를 이룬 인생'이고, 정작 '자신이 이루고자 하는 바'는 사람마다 다른 것이 자연스러울 터, 성공적인 인생은 제각각이어야 말이 된다. 자신이 생각하는 성공이 다른 이의 그것과 다르다고 업신여기거나 비웃는 이는 (내 기준으로는) 성공할 가망이 상당량 없다.

내 기준이란? '인식의 오류로부터 자유로와지는 상태'이다. 오류로부터 해방되는 삶은 소크라테스가 추구한 삶이었다고 하는데, 따라서 내가 살아있는 한 내가 (내 기준으로) 성공할 가능성은 전혀 없다. 뭐, 이거야 인류사 이래 인간으로 그런 상태에 도달한 사람이 없다는 귀납추리에 근거한 것이므로 상당량 참에 가까울 거다. 글치만 내 성공을 위해 몸부림은 치겠다고 다짐하는 거다. (기준을 바꾸지 않은 상태에서 그것마저 하지 않으면 왜 사느냐?는 질문에 봉착하니까.)

안티조선에 발을 담그기 전, 조선일보 즐겨보며 삶을 희희낙락 즐기던 30대 중반, 그러니까리 1996년 (상당히 눈 익은 숫자잖는가?), 손쉽게 돈을 벌기 위해 주식에 손을 댄 적이 있다. 이른바 카지노자본주의의 세포. 대강 2년 하다가 착실히 말아 먹고 내 물이 아니다는 결론을 내리고 철수했는데, 주식할 때 하지말라는 짓(돈 빌려 하지 마라, 카드 돌려막기 하지 마라, 신용 당기지 마라, 연속 상한치는 종목은 가까이 가지 마라...)은 다 했다. 돌이켜 보면 그 정도로 끝난 게 다행이지 싶다. (아직 살아 있으니까)

그럼 집은 있느냐? 없다. 2000년 서울에서 전세살 때 무리해서 대출을 받아서라도 집을 사두는 것이 낫다는 말을 많이 들었지만, 내 눈엔 그 정도로 돈을 들일 가치있는 물건이 아니었다. 그 때도 '아파트 값은 곧 떨어진다'고 나발 불고 다녔는데, 뭐 100년 이내에 떨어질 날이 오긴 올 것이니 영 틀린 말은 아닐 것이며 아직도 (마나님에게 두들겨 맞으며) 그 자세를 꿋꿋이 견지하고 있다.

이런 형편인지라, 우아하게 돈 들일 일 별로 없는 '인식의 오류로부터 자유'를 추구한다고 이빨을 푸는 거다. 벌써 폼 나잖아? 근데 이 짓도 10년 정도 하니 내가 정말 심각하게 해탈-일체의 집착에서 자유로와지는-할 것 같은 느낌이 든다. 갖고 싶은 것이 거의 없고 되고 싶은 것도 별로 없는데 다만 알고 싶은 것은 나날이 많아지고 있다.

이른바 명품으로 도배를 한 사람, 그거 부러워 짝퉁(참 말도 잘 만든다)으로 치장한 이, 강남으로 이사간 동급생을 부러워하는 아이, 10억 모으려 점심을 컵라면으로 때우는 젊은이, 경차가 호텔에서 홀대받는 나라, 요약하면 남의 눈에 비친 내가 내 본질이 되어버린 나. 타인의 인식으로부터 자유로와지려 하면 삐딱이가 되는 사회. 거듭 말하건대 나는 그리 여기는 이를 불쌍하게 여기지만 그 이들 역시 나를 측은히 여길 테니 공평하다.

한국을 잠시 떠난 상태에서 그래도 한국의 포탈을 통해 전해듣는 한국의 모습 중 신기한 부분은

1. 대다수 사람들이 돈벌기에 목숨 건다. 돈 없는 이는 사회적 품위란 걸 기대하기 어렵다. 돈 없는 이는 '루저'이다.
2. 돈벌이의 수단으로 부동산, 특히 아파트에 열광한다. (수명 다된 아파트의 앞날이 어찌될지 진지하게 고민하는 사람 드물다)
3. 대학에서 함양할 학력을 고등학교 때 돈 쳐들여 미리 달성시킨다. 돈이 없으면 대학 입학 경쟁에서 밀리는 것이 당연하다.
4. 수도권에 인구의 반이 밀집되어 사는데, 그거 이상하다고 하는 사람 별로 없고 서울로...서울로...한다.
5. 수출만이 살 길이라고 믿는다. 내수가 맛이 가도 수출(SS전자)이 잘 되면 대한민국 먹고 사는데 지장없다고 생각한다.

거의 단언해도 좋겠다, 이런 나라 지구 상에 찾아보기 어렵다.

어찌 이것 뿐이겠느냐만, 1번 부터 5번에 이르기까지 이 사회가 박정희 이후 지속하며 외면해 온 '성장의 그늘'은 세계 공황과 더불어 앞으로 2년 안에 끝장이 날 것이다. 지극히...요란한 굉음을 내며 무너지겠지. 그래도 배운 것이 삽질인지라 4대강 정비 보다 더한 국책사업을 벌여 위기를 벗어나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겠지. 뭐, 끝장이 나려면 단단히 나는 것이 낫긴 낫다만 그 와중에 피 보는 백성들은 무신 죄란 말일까?

***

우석훈 성공회대 교수가 지은 '촌놈들의 제국주의'를 봤다. 88만원 세대 시리즈 4부작 중 3부에 해당하는데, 언제 몽창 다 사서 봐야겠다는 다짐을 한다. (이리 적어 놓아야 안잊어먹는다) 거기 보면 노무현 정권 초기 이라크 파병이 제국주의 발상이라는 말이 나오는데, 그 때의 나는 조건부 찬성을 적었던 기억이고, 쟁토에서 어떤 이로부터 '솔바람도 골 때리는 바이러스에 감염되었군'이라는 댓글을 받은 적이 있었다. 따지고 보면 나도 촌놈인 주제에 제국주의자인 게야...(2009.1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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