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까락 운동/안티조선

대북 식량지원과 삐라, 6.15 합의'사항' 존중의 전망

섬그늘 2009. 3. 9. 20:50

작년 7월 이후는 (금강산 피격이 있었을 뿐더러 미국이 특별사찰을 주장하면서 북핵이 꼬이는 바람에) 시간 여유를 벌었으나 지금 (‘기다리는 것도 전략이야라며) 여유를 부리다간 자칫 국제적으로 새될 처지에 놓인 버린 모양이다. 이거 갸우뚱인 분은 아래 글 모음을 찬찬히 보시라.

 

금강산, 독도 (+자료 모음)  (2008.07.16)

정세현의 정세토크 1~17 묶음 (프레시안) (2009.03.06)

 

둘 다 정독하는 데 5시간 이상 걸릴 텐데, 내게는 특히 정세현의 정세토크 읽는 시간이 아깝지 않았다. 오랜 실무를 해 본 사람이 갖춘 통찰력으로 북한을 둘러싼 각 주체들의 플레이 분석, 한국 정부는 어떻게 하는 것이 최선일지를 논리 정연하게 말하고 있다. 작년 7월 금강산 사건 이후 시작하여 격주간 대담을 싣는데, 시간이 지난 지금 전지적 관점이 되어 유심히 보면 이렇게 하는 것이 가장 바람직하다라고 말한 충고의 거의 대부분을 대한민국 정부는 들은 척도 하지 않았다. 하긴 읽기나 했을까 의문이다. 여하튼 시간이 없는 분들은 최신 기고인 17([정세현의 정세토크]<17> '특사 파견' 美 속내 바로보기/ 미사일 발사 가능성 높은데…보즈워스는 왜? )만이라도 꼭 읽어 보시라.

 

***

 

이렇듯 북한을 둘러싼 최근의 이야기를 뒤져 보다가 노무현 전 대통령이 말년에 어떻게 했는지를 접했다. ([정세현의 정세토크] <9> DJ는 왜 갑자기 정상회담을 말하나? "80노인이 낳은 애, 데려다 키우면 제자식 돼요" 참조) 그거 보고 또 나름의 감점을 하며, 선택과 논리적 정직성을 생각한다. 대개 언제나 한번 인식을 정하고 선택한 것에 대한 주위 비판을 귓등으로 듣는 경향을 갖나 보다.

 

노무현 전 대통령 역시 후보 시절의 후단협의 행태, 대북 퍼주기에 대한 부정적 인식으로 대북 특검을 허용했고 줄곧 정상회담 충고를 무시하다가 막판에서야 10.4선언(80 노인이 낳은 불쌍한 아이)을 만든 것 아닐까? 대북 화해협력 노선을 걷던 이들이 적극적으로 나서라 했지만 믿음이 안 가는 이들로 이미 낙인찍혔을지도 모르겠다. 혹은 근거 없는 낙관, 무모함, 역량 미흡을 자기합리화하는 방편으로 한 발 빼기론을 견지했을지도 모르지.

 

문득 상대의 미움을 받는 지름길은 상대의 선택을 폄하하는 것이라는 말이 떠오른다. (: 15,000원에 사셨어요? 아이고 인터넷에선 12,000원까지 할인되던데.) 내 선택이 공격받았다 하여 상대를 미워하는 것은 적절한 판단행위라고 볼 수 없지만, 사람의 인식이란 그렇게 반응하는 한계를 지니고 있다고 하니 항상 경계할 일이다. 노무현 전 대통령에 대한 평가가 날이 갈수록 좋아는 지겠지만 결국 실패한 대통령으로 남을 것이라는 고종석의 글을 보며 든 생각이다. 그도 그렇고 이명박 대통령도 그렇고 쓸 데 없이 적을 많이 만들었다는 점에서 실용을 추구한 대통령은 아니라는 판단이다.

 

비슷한 이야기. 이명박 정권이 처음 다룬 미국 쇠고기 문제, 그것 역시 미친 소일수록, 실제 위험할수록 분노가 정당화되는 경향이 있었을 게다. 그 시공에서 나는 그렇게 위험한 것은 아니다라고 했었지만 지금도 미친 소를 들여오려 한 이명박 정권에 대한 분노, 그걸 거든 조중동에 대한 광고 압박 운동을 열심히 하는 젊음이 있다. 옆에서 그거 효용이 별로거든? 라며 접근하지만 별로 소통이 되는 것 같지는 않다. 이것 역시 듣는 이의 선택을 폄하한 결과일까?

 

아마도 둘 중 하나이겠지. 내 글이 친절 또는 정합하지 않았거나 형성된 강렬한 인식이 장벽이 되었거나. 자신의 선택을 폄하하는 말에 귀 기울이는 것은 항상 시간 낭비일까? 인간의 지각으로 사물을 인식하는 한계를 안고 가는지라 내 선택이 항상 정합할 수는 없는 일이거늘, 내 선택을 까탈 잡히면 화가 나는 현상을 어찌 관리할 것인가, 항상 숙제이다.

 

나는 안티조선을 왜 하는가? 되도록 내가 내 사유의 주인이 되기 위해서이다. 내가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판단하는 어떤 주체가 뭐라고 했다고 해서 머리 비우고 받아들이면 곤란하다 (권위의 추론), 많은 사람이 간다고 해서 그 길이 꼭 바람직한 것은 꼭 아니며 (다수의 추론), 내 인식이 이미지에 놀아난 결과물은 아닌가, 즉시적 판단을 되도록 보류하고 자신의 눈으로 현상을 보려고 노력할 일이다.

 

***

 

일러 무삼하겠습니까만, 작년, 2008년 이명박 정권의 남북관계는 특히 실용적이지 않았다. 당췌 뭐 하자는 플레이인지 모를 정도로 아무 것도 않다가 세월 다 갔는데 그걸 합리화하는 표현으로 기다리는 것도 전략이다란다. 게다가 미일중 회담 때는 강경이 아니라 제대로 해 보자는 것라셨단다. 한국말이 꽤 고생하는구나.

 

, 골수 지지층의 정서가 그렇다니 어쩔 수 없는 측면은 있을 터이다만 작년에 식량은 물론이고 비료마저도 한 톨도 지원하지 않은 것은 영원히 기록으로 남는다. 심지어 WFP(세계식량기구)를 통한 지원도 거부했단다. 그러고는 유례 없는 풍작인지라 식량지원이 급하지 않다는 논평을 연말에 낸 모양이다. 그러니까리...2008년에 이어 2009년도 지원을 아끼겠다, 그런 말씀인가요?

 

예전 쪽집게님이 게시판에서 안티조선은 북한인권 야그만 나오면 발끈하더라운운하시며 자유를 실은 삐라를 예찬하셨던데, 재미 있는 현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뭐냐면 이른바 대한민국의 자칭 좌파는 북한인권, 자칭 우파는 식량지원 야그만 나오면 그거 쓸 데 없는 짓거리라고 게거품을 무는 것은 아닐까?

 

거듭 쓰는 바 누구나 자신의 선택은 정합하다고 믿고 싶어한다. 설령 그 선택이 닭짓이었다는 비판, 논거가 나오더라도 애써 외면하는 심정을 유지하며, 이걸 일관성의 법칙이라고 한다나 보다. (로버트 치알리니, ‘설득의 심리학) 나야 게시판에서 자칭 양파이지만, 일단 대북 삐라에 대해서는 효용이 별로라고 주장한다.

 

기억에서 예전 1970년대 북한에서 살포한 삐라를 끄집어 내어 보자. 거기 박정희 타도문구가 들어가 있거나 돈이 들어가 있다면 어떨 것 같은가? 돈이라면 환장하는 가치관을 삐라 날리는 이들이 가졌는지는 모를 일이지만 그거 받는 사람의 느낌이 어떨지, 독자의 처지에서 약간만 역지사지를 해 보면 삐라의 영양가가 대충 나오잖냐.

 

(연합뉴스) <'北인권거론' 남북합의 위반인가> 정부 "인권은 보편적 가치의 문제..비방.중상과 달라"(2009.03.04)

신각수 외교부 제2차관은 현지시간 3일 제네바에서 열린 제10차 유엔 인권이사회 '고위급회기'에 정부 수석대표로 참석, 기조연설을 통해 "정부는 북한의 심각한(dire) 인권상황에 대한 국제사회의 깊은 우려에 공감한다"고 밝혔다.”

 

설득은 웬간히 믿음이 가는 사람이 주체일 때 힘을 발휘하는 법이다. 북한의 열악한 인권에 가슴 아파 하는 열정 (열정은 있다고 본다. 머리도 가슴도 뜨거워서 그렇지)을 가진 이라면 그 효용도 생각하는 것이 어떨까, 상대의 염장을 질러 댄 상태로 인권 개선해라하면 하이고 그래야지요라겠나.

 

굶주리는 동포를 위해서 식량지원을 해야지만 그거 군량미로 전용되지 않는다는 보장이 어디 있냐 (인민군 차량이 쌀 포대를 옮기거나 진지 구축에 사용하거나 한 사진), 답답하다는 이는 [정세현의 정세토크] <5> 대북 식량지원 관련 오해와 억측들 "통미봉남 부담 줄었으니 뒷짐지고 있자?"  일독을 권한다. 요약하면,

 

1.     식량, 석유 따위 자원 배급은 군과 당이 우선이다. 그거 충당할 경작량은 되므로 외부 지원은 백성이 대상이다.

2.     지원 식량은 정미를 해서 공급하므로 재고 비축용으로는 사용할 수 없다.

3.     북한체제 상 분배투명성을 확실히 보장할 방법은 없다 (감독관 앞에서 나눠주고 나중에 뺏아도 어쩔 수 없는 사회이다) 따라서 WFP 경유가 아닌 직접 지원이 실용적이다.

4.     식량배급은 군부대, 고급당원이 우선적이다, 따라서 기름이 없어서 군 차량을 쓰는 경우가 발생한다.

 

나는 식량지원이 뭘 받을 보장이 있어야 주는 상호주의의 대상이 아니며, 어떤 열악한 환경이어도 지속해야 하는 범주로 여긴다. 인도적 지원에는 (설령 노림수가 따로 있더라도 명시적으로는) 조건을 다는 것 자체가 몰상식이다. 게다가 실용적으로는 최소 발언권을 확보하는 토대가 되기 때문이다. 그런 기본도 하지 않으면서 어떻게 상호 신뢰를 이야기하나?

 

작년 북한이 부족분 150만톤 (2009년 올해는 아마도 117만톤이 부족할 것이라는 뉴스가 떴다) 중 미국이 50만톤, 나머지 태반을 중국에서 지원 받았을 텐데, 대한민국 정부는 요청이 와야 준다. 요청이 오지 않는 것으로 보아 아직 배고프지 않는 갑다라고 말했다. 심지어 생기는 것이 있어야 검토하겠다고도 했었지. 남한에게만큼은 아쉬운 소리 하고 싶지 않은 그 심리를 몰랐거나 알면서 교착 상태로 몰아간 게지. 그거이 무모하지 않으리라는 자신감의 근거? 난 정말 모르겠다.

 

엊그제 조선일보 만평을 보니 싹싹 빌어도 줄까 말까 하는 판에란다. 인권을 추구하는 이가 인도적 지원을 애써 도외시하는 모습은 무쟈게 을씨년스럽다. 식량지원과 삐라 둘 중 어느 쪽의 불가론이 현실에서 효용이 있을지 실용을 추구하는 이라면 함께 따져보는 것이 바람직하리라 나는 생각한다.

 

***

 

하여간 참 어렵게들 산다. 이명박 대통령께서 3.1절 기념사에서 “6.15 10.4선언의 합의사항을 존중한다라셨단다. 이 정권 들어 1년 이래 합의정신이 아니라 합의사항이라고 표현한 것은 내 기억에 처음이다. 이제까지는 아래 인식이었다는 이야기이다. (아직까지는) 지킬 의무가 없다는 것이지.

 

(연합뉴스) 玄통일 "6.1510.4선언은 정치적 선언" 국회 비준 안돼..이행위해선 남북합의 필요 (2009.02.16)

현 장관은 이날 국회 본회의 외교.통일.안보 분야 대정부 질문에서 `6.15, 10.4선언은 양해각서에 불과하다'는 주장에 대한 견해를 묻는 민주당 최영희 의원의 질의에 이 같이 답한 뒤 "구체적으로 이행되기 위해서는 이행에 관한 남북간 합의가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6.15 10.4선언을 개무시하고 끝까지 개기고 싶은 심정, 나야 이해한다. 10년간 퍼주고 뺨 맞기’(1995년 씨아펙스가 인공기를 게양했을 때 실은, 조선일보 사설 제목이었을 듯, 이런 걸 예술적이라고 한다, 뭔가 확 와 닿잖나?) 로 일관한 남북관계에 심히 부정적인 인식을 가진 이들의 적극적 후원에 힘 입어 출범한 정권이다 보니 성의를 보여야지. 그러다 보니 아래와 같이 통일부 40주년 기념식에 6.15 또는 10.4라는 숫자가 등장조차 하지 않는 풍경까지 나타난다.

 

(통일뉴스) 이상한 연혁보고 - 창설 40주년 맞은 통일부의 현주소 (2009.03.02)

현인택 통일부 장관은 기념사에서 남북기본합의서를 언급했지만 역시 6.15공동선언과 10.4선언은 입에도 올리지 않았다. 대신남북한은 기존의 합의들을 존중”해야 한다고만 말했다. 전날 3.1절 기념사에서 이명박 대통령이남북 간 합의사항을 존중할 것”이라고 한 발언과 궤를 같이하면서도 좀더 소극적 표현에 머문 셈이다.”

 

집권 1년 동안 대통령의 발언을 모은 기사가 있길래 퍼 왔다. 하나 같이 주옥 같은 발언들인데, 이 중 남북관계에 대한 것을 위주로 추리면 아래와 같다.)

 

(뉴시스) <이명박정부 1주년>⑥李대통령 '말말말' (2009.02.22)

"남북관계도 실용의 잣대로 풀어나가겠다" (2.25 취임사)

"철저히 국익 위주의 실용외교로 가야 한다" (3.11 외교통상부 업무보고)

"청와대에 갇혀서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모르게 될까봐 늘 두렵다" (4.23 재외공관장 초청 만찬)

"지난 10년의 그늘이 크고 그 뿌리도 생각보다 깊더라" (5.15 첫 국가조찬기도회)

"북한은 과거에 비난을 해서 덕 본 습관이 있는 것 같다" (5.20 국외이북도민 고국방문단 간담회)

"7.4공동성명, 남북기본합의서, 비핵화 공동선언, 6.15공동선언, 10.4정상선언을 어떻게 이행해 나갈 지 북측과 진지하게 협의할 용의가 있다" (7.11 18대 국회 개원사) (금강산 피격 보고를 받은 직후였음)

"북한, 남측 이념적 분열 시도 계속할 것" (8.18 을지국무회의)

"전쟁 나면 하룻밤에 끝낼 태세 갖춰야" (8.21 을지연습 종합상황실 방문)

"(남북) 탐색전은 필요없다. 우리가 남이가? 탐색하게…" (9.10 민주평통 미주자문위원 간담회)

"(북한이) 도발하면 무조건 이겨야 하는 일도 있기 때문에 강군이 돼야 한다" (9.26 2008년 합동 화력운영시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이념적 현상이 일어나고 있다. 배고픈 북한 동족을 동정하고 도와주고픈 순수한 마음과, 이념적으로 북한 세력에 동조하는 것은 확실히 다르다" (10.8 재향군인회 오찬간담회)

"기다리는 것도 때로는 전략" (11.12 북측의 군사분계선 육로통행 차단 조치와 관련)

"강경파가 아니라 북한을 바로 대하려는 것이다. 북한이 자세를 바꾸기를 기다리고 있다" (11.23. 한미일 정상회담)

 

거진 갈짓자 걸음이요, “어떤 우방도 동족보다 소중할 수는 없다에서 핵을 가진 자와는 악수할 수 없다를 종횡무진하던 김영삼 전 대통령의 자기분열증에 버금간다. 그럼 이제 와서 왜 합의사항을 존중하겠다고 했을까? 앞으로 어떻게 전개될까? 그걸 가늠하기 위해 각계의 반응을 들어보자. 일단 북한은 헛소리 마라, 궤변이다로 일축했단다. (진정성이 의심된다는 게지, 기사를 본 기억은 있는데 못 찾겠다) 여기에 대해,

 

(뷰스앤뉴스) 한나라 "북한 지도부, 정신상태 의심스러워" 북한의 李대통령 퇴진 주장에 강력 반발 (2009.03.03)

북한이 2일 조국평화통일위원회 대변인 담화를 통해서 이명박 대통령의 3.1절 기념사를 맹비난하며 이 대통령 퇴진을 주장한 데 대해 한나라당이 3 "선의에서 돕겠다는 사람을 욕하는 북한 지도부의 정신 상태를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며 원색적으로 맞받았다.”

 

한나라당 이 아자씨들은 북한에서 대통령 퇴진말만 나오면 발끈하여 오버해야 하는 역할을 담당한다. , 당연하겠지. 근데 김정일 타도란 문구를 단 삐라를 날리는 보수단체를 적극 말리지 않으며 민간에서 하는데 어떡하나?, 말려도 듣질 않는다라며 뒷짐 지고 은근히 즐기는 듯한 통일부 태도에 빡 돌아버렸을 북한의 처지는 생각해 봤나? 대통령에 화살이 날아오면 몸으로 막아내는 한나라당 처지 보다는 훨씬 더 절박하게 조치를 해야 하는 처지일 게다. 1년 간 합의정신수준에서 뭉기적거린 대통령 및 통일부의 말에서 진정성을 느끼기란 참으로 어렵다.

 

그나마 대통령이 평소 보다 전향적으로 변화할 자세를 보인 것이 위의 2008.07.11국회 개원 연설문과 지금 2009.03.01의 기념사인데, 그 공통점은 통미봉남의 가능성이 높아졌을 때인 거다. 세가 불리할 것 같으면 담화를 발표하고 누그러지면 뒤통수 때리는 것은 2008년 촛불시위 때 원 없이 본 터인데 북한과도 같은 유형으로 나는 본다. 이게 그 이가 말하는 실용일까?

 

작년 한 해 남북관계에 관한 한 남한 정부의 몰상식이 관계 악화의 책임이 있다. 역량도 되지 않는 주제에 (주요 지지층의) 가치관에 걸맞게 북한을 길들이려 했고 원 없이 개판을 만들었다. 폼이야 났겠지. 그 결과 살림살이 나아졌나요? 뜻한 바 대로 북한을 쬐끔이라도 길들이셨나요? 이제 와서 합의사항을 존중하겠다면 애초 천명하셨던 원칙은 어떻게 되는 건가요? 전략이라는 이름의 우아한 기다림은 아무 소득 없는 채 그냥 이대로 끝내도 되는 건가요? 묻고 싶다.

 

부글부글 끓다 못해 마음 한 구석에서는 더 화끈하게 기다려서 끝장을 보라고 하고 싶지만 (북미중 끼리만 대화하고 그 찌꺼기로만 살다가 돈만 내는 역할로 전락) 빈대와 초가 그림이 떠 오른다. 내가 싫어하는 정권 망가지는 꼴 보려고 나라를 망칠 수는 없잖나 말이다. 그건 내 자존을 존중하는 길은 분명 아닐 게라.

 

이런 차에,

 

(조갑제닷컴) 6.15 선언 존중하면 李대통령 탄핵해야 (2009.03.03)

李 대통령이 만약 진심으로 6.15 선언을 존중한다면 국회와 헌법재판소는 그러한 反헌법적 행위에 대하여 대통령을 탄핵해야 하고 국민들은 퇴진운동을 펼칠 의무와 권한이 있다. 6.15 선언 존중은 '赤化통일 존중'이기 때문이다.”

 

란다. 거 참...이거 자칫하면 조갑제를 비롯한 골수 지지층이 대통령 탄핵을 들고 나오고 내가 궁민이 뽑은 대통령을 그런 사유로 탄핵할 수는 없다며 막아서는 엽기적인 일이 벌어질지도 모르겠다. (노무현 전 대통령 탄핵 추진 때 난리블루스를 보며 나는 저렇게 되진 말아야지 하고 다짐한 바 있다.)

 

어떻게 논리를 전개했길래 ‘6.15 선언 존중 = 적화통일 존중이 되는지, 나는 신기할 따름이다. 아마도 6.15 선언이 연방제 통일을 상정한 북한의 발명품이고 그걸 따르는 것은 북한의 통일전략전술에 놀아나는 것이라는 게 근거일 게다. 그게 언제적 이야기이며 (아마도 1970년대), 그리 되도록 넋 놓고 갈 정도로 남한 정부 당국자들의 머리큐를 형편무인지경으로 판단했다는 말이 된다 (, 작년 플레이를 생각하면 어느 정도 심정적 동의가 간다만). 조갑제를 비롯한 우국지사들이 눈 시퍼렇게 감시하면 될 것 아닌가? 그렇게 대한민국 체제에 자신이 없나? (, 나도 요즘은 이명박 정권이 주무르는 체제에 자신이 없어져 가고 있긴 하다.)

 

암만 미운 주적이 획책하는 것일지라도 현실적으로 정합하써 먹을 일이다. 상상력의 빈곤일까? 내겐 현재 대한민국의 역량, 국제 역학관계로 미루어 보아 연방제로 가서 적화통일이 되는 그림은 영...그려지지 않는다. , 그 정도라면 아예 접촉조차 위험하다는 수준으로 견지해 온 조갑제의 논리에 일관성은 있다. 다만 접촉조차 하지 않으면 (조갑제가 최근 관악포럼에서 논한) ‘평화적 대화는 무슨 수로 하누? 나와는 분명 별세계에 사는 사람이다.

 

***

 

마지막으로, 이 중차대한 시기에 대북 정책을 맡으신 현인택 통일부 장관의 등장이다.

 

(연합뉴스) <玄통일, `대북 유연성' 강조> "원칙 얽매여 장애 초래않겠다" (2009.03.04)

아울러 현 장관은 이 대통령이 3.1절 기념사를 통해 `남북간 합의사항 존중'을 언급한데 대해 "(존중한다고 밝힌) 남북합의에는 6.15공동선언과 10.4정상선언도 포함된다"며 과거 `합의의 정신 존중'과는 "뉘앙스의 차이는 분명히 있다"고 설명, 두 선언에 대한 정부의 입장이 한걸음 진전했음을 확실히 밝혔다.”

 

(연합뉴스) <정부 대북발언에 미묘한 변화기류> `원칙강조' 대신 `현실론' 입각 발언 부각 (2009.03.05)

그 동안 정부의 핵심 대북 메시지는 `기다리는 것도 때로는 전략' `시간이 걸리더라도 제대로 출발하는 것이 좋다'는 등 이 대통령의 발언에서 보듯 원칙을 강조하는 측면이 부각됐던 게 사실이다. 그런 점을 감안하면 최근 메시지는 남북관계의 `현실론'에 포커스를 맞춘 듯한 느낌을 준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하고 있다.”

 

이 분을 소개할 때 비핵개방3000’의 특허권자라고 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게 정세현 전 통일부 장관의 설명이다. 앞으로 대북 사령탑이 될 사람을 그리 소개하면 부정적 이미지가 강해져서 대화 분위기 만드는 데 도움이 안 된다는 것이지. 글쎄, ‘비핵개방3000’이란 슬로건 자체가 상대를 개무시하며 자기만족을 추구하는 표어라는 걸 깨닫지 못하는 사람, 이 분이 작년 인수위 시절 말씀하셨다는 통일부를 없애자는 말이 상대 처지에 어떻게 받아들여졌을지, 표현을 고르는 커뮤니케이션을 해 보지 않은 사람들이 그걸 이해할지는 의문이다만.

 

(통일뉴스) "이렇게 들러리 서 가는 것 죄 짓는 것 아니냐"  평통 대전중구協 사퇴한 남재영 목사 "자문 의미 없다" (2009.03.04)

특히 "이명박 정부 들어서고 난 다음 지난 한 해 동안 정부차원에서 북한의 인민들을 구휼하기 위해 식량과 비료지원이 '전무'했다는 기사를 접하면서 이 정부의 민주평통자문위원으로 있다는 사실이 민족의 역사에 한없이 부끄럽고 죄스러웠다"고 한탄했다.”

 

이런 일이 일어나고 있는 현재, 현인택 장관의 통일부가 과거를 성찰하고 미래지향적인 교류협력을 추진할 수 있을까? 그래서 남한이 주도하는 동북아 역학관계를 만들 수 있을까? 나는 매우 부정적이다. 새롭게 판을 짠 미국 국무부를 상대로 북한이 더 먹으려 무리를 할 것이고 남한은 안중에도 없을 터인데 이제껏 비핵개방3000’에 담긴 철학에 충실한 플레이를 한 결과 거의 바닥이 드러났거던. 결국 이걸 만회하는 역할은 폼나게 비핵개방3000’을 입안한 자의 몫이 되어 버리는, 결자해지라는 거다. 당분간 자기가 한 말을 씹어 먹어야 하는데, 웬간한 내공으로 그게 쉬울까?

 

10년간 교류협력을 겪은 이들의 이야기를 듣지 않고, 있는 채널 조차 모두 폐기하여 일이 벌어지면 연락할 길도 없게 된, 점령군 수준으로 과거 행위를 퍼 주고 뺨 맞기로 해석하며 죄인시한 정부가, 신임 통일부 장관이 현실적이 되어 간다고 한다. 그 변화의 원동력이 되었을 정세 변화에 나야 공감하지만 골수 지지층 수준을 감안하면 절망적일 정도로 가시밭 길이 앞에 놓여 있다.

 

삐라 날리는 이의 염원대로 북한 체제가 무너졌다고 치자. 그 권력 공백을 누가 차지하냐? 중국이 동북공정 어쩌구 하는 것이 유사시 북한 먹기 위해서라는 설도 있던데, 그럴 때 남한이 나서서 ...우리는 명색이 동포걸랑요?’ 할 때 남들 식량지원할 때 넌 뭐 했는데, 명색이 동포래매? 이제 와 무신 염치로 지분을 주장하냐?’ 라면 무어라 말할 것인가, 내가 내 아이들에게 노래하는 말, 공부는 하기 싫지, 글치만 성적은 나아졌으면 좋겠지, 이거이 도둑넘 심보 아니냐, 왜 그렇게 인생 사냐?

 

뼈 속 까지 당위를 절감하지 않는 한, 현인택 장관이 가치관을 바꿀 가능성은 프로조선이 안티조선 되기 보다 낮다. 김대중/노무현 정권의 통일부 장관이 한 명도 초대되지 않은 통일부 40주년 기념식, 매우 특이한 실용아니겠나? 그 나물에 그 밥으로 마음 맞는 조선일보 류의 말만 들으며 화해협력을 지향하기란 속 터지는 노릇일 터, 한번 잘해 보라는 심정이 한 켠에 있지만 걍 냅두면 나와 내게 의미 있는 이들의 손해라는, 빈대와 초가집 그림이 날 괴롭게 한다.

 

(2009.03.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