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까락 운동/안티조선

▦근조 노무현▦, 대세론에 불복하는 삶

섬그늘 2009. 5. 25. 12:49

2009년05월23일 아침, 노무현 전 대통령이 투신으로 62세의 삶을 마감했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빈다.

 

7년전 2002년 3월, 민주당 내 대통령 후보 경선이 막을 올렸을 무렵, 나는 뒤늦게 노사모에 가입했다. 명부에 이름을 올리고 후원금 몇 푼 보내고 게시판에 글 약간 올린 것 외 내가 노사모로서 활동한 것은 거의 없다. 내가 원체 '우리모두'외엔 다니질 않는 성향이었고 게시판에 일생 쓸 시간을 당시 2002년에 몰아 쓴 시기였으니까 당연한 일이었을지 모르겠다. 어쨌든 그가 대통령에 당선 확정이 된 후 나는 노사모를 탈퇴했다.

 

말년의 대연정 발언, 한미FTA 추진으로 인한 최근 감점에도 불구하고 그에 대한 내 종합점수는 아직 높은 편이다. 하지만 거듭 쓰는 바, 그거이 내가 일단 한번 선택한 길에 대한 집착 탓일지는 자신이 없다. 평소 인식 또는 이미지 선점의 강력함을 경계하고 있다고 생각하기에, 한번 마음을 준 대상에 대한 객관적 판단을 추구하는 평상심은 이미 인간의 반열이 아니라고 여기기 때문이다.

 

뉴스를 접하자 마자 고인에 대한 묵념을 잠시. 입 밖으로 나온 소리는 '짜증 난다'였다. 내 집 마나님은 눈물이 날 것 같다며 내 반응을 통 이해하지 못하는 눈치. 이건 마치 북적거리는 전철 안에서 시끄럽게 통화하는 이들을 제지하지 못하며 침묵하고 있는 나에게 내는 짜증과도 같다. 세상과 불화하며 자기 길을 가려던 이가 세상에 트집 잡히고 이미지 조작을 받은 나머지 마지막 선택을 했달까. 뒤져보니 전두환 노태우 때와 비교가 아니될 정도로 특이한 균형감각을 발휘한 작금 검찰수사를 지지하던 이들, 그 현상을 가능하게 한 언론의 작업, 그그런 이미지 작업에 놀아나진 않는가 성찰하려 하지 않는 다수의 인식 또는 자기 확신이 있을 게다.

 

내게 있어 노무현이 남긴 미덕은 비주류 노선을 표방한 이가 비슷한 코드를 가진 이들과 공명하여 세를 결집하는 사례를 대한민국 사상 최초로 이뤄냈다는 점이다. 대세론은 개소리일 수 있다는 것, 꿈을 가진 자들을 결집하여 현실을 바꿀 수 있다는 걸 증명해 낸 것이다. 그것만으로 나는 족하다, 그 이후 내가 그를 통해 실현되기 바랐던 실험들이 현실의 벽을 넘지 못하고 좌초했던 말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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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세론'이란, 세상의 대세가 이 방향이므로 이 쪽에 줄을 서라는 논리이다. 이건 가 보지 않은 미래의 일을 현재에 결정 짓고 동참을 권하는 논법이다. 될 넘을 찍어주자는 단순명쾌한 주장인데, 될 넘인지 아닌지에 대한 논거는 '많은 이가 추종하는 방향이다'는 달랑 하나. 결국 다수에 종속된 가치 판단을 하라는 뜻인 거다.

 

근데 대세론은 듣는 이를 기만하는, 야바위 논법이다. 다수가 밀고 있는 후보가 자신의 가치관이나 계급에 부합한 정치 행위를 하리라는 보장은 없다. 듣는 이 자신이 어떤 생각을 하며 사는 인간이든 상관 없이 다수를 따라야 한다면 당췌 투표는 왜 하나? 또는 '나를 골빈당 취급하다니' 하며 화를 버럭 내야 하거늘, 또는 사회적 체면상 '왜 그래야 하는데? 그러면 내 살림살이는 좋아지나?'는 정도로 반응할 일이거늘... 예로써 CEO 출신이 대통령 되면 콩고물을 기대할 수 있다는 건데, 그 이가 분배를 어찌 생각할지 따지는 이 드물다.

 

다수의 편에 서는 것이 일신의 안녕을 보장한다며 밥상머리 교육을 하던 시절이 있었다. 가만 있으면 중간 간다는 훌륭한 금언도 있다. 근데 그 노선은 자신의 가치관에 걸맞게 행동하며 얻는 충족감과 배치되는 바, 그 시공의 다수와 다른 가치관으로 사는 이는 '시대와 불화'할 수 밖에 없다. 아마도 대한민국의 교육, 경제, 정치, 외교 거의 모든 분야에서 다수가 지향하는 바와 내 가치관은 꽤나 다르지 싶다.

 

***

 

 내가 바람직하다고 여기는 방향과 반대로 가는 사회 현상을 볼 때 나는 대세론을 떠올린다. 예로써 공교육이 중요하지 않다고 하는 이는 드물다. 글치만 남들 다 하기 때문에 자신의 아이는 사교육을 시킨다. 자신의 가치관과 대세가 배치할 때 대세를 따르지 않으면 손해라는 거다. 근데 모두가 그 짓 하면 원점이라는, 매우 고약한 게임이다. 아직은 아이들이 잘 따라주고 있다만, 학습지로 때우자는 나를 보며 다른 이들은 측은하게 보기도 하나 보다.

 

경제 기반이 통 나아질 기미가 없는데 시중에 풀린 미친 돈, 투자할 곳을 마땅히 찾지 못한 자금이 몰려 유동성 장세가 펼쳐지고 있는 것으로 내가 판단하는 주식판을 보는 심정 역시 그러하다. 일본 친구들은 내년 말 까지 글로벌 경제 위기가 이어질 것으로 본단다. 토요타가 대표적 우울한 사례로 언론이 크게 다룬다. 반면 한국은 오래 참았다는 듯이 낙관이 경제지면에 난무한다. 대충 저점 대비 일본이 12%(9,000/7,800), 한국이 47%(1,400/950) 주가가 올랐다. 좋은 말로는 다이내믹 코리아요, 거시기한 말로는 카지노 자본주의.

 

부동산...생략하련다. 참여정부야 의지는 있었으나 실현 못한 무능을 두들겨 맞을 일이지만 누구 보다 비지니스 프랜들리를 표방한다는 이 정권이, 기업경쟁력을 구성하는 주요 항목인 고정비 태반을 차지하는 부동산의 연착륙을 도모할 의지 조차 없어 보이는 것은 이해하기 어렵다. 이건 걍 채칵...채칵...시한폭탄인데 별 신경쓰는 것 같지 않다. 하긴 사람도 확실히 죽기 마련이지만 언제 죽을지 모르므로 하루를 태평하게 살긴 하지.

 

대한민국에서 대세를 도외시하면 돈 벌기 어렵다. 대세를 따른단들 상투 잡는 불나방 신세를 면하기도 쉽지 않다. 일찌감치 주식으로 집 한 채 날린 처지인지라 내가 놀 물이 아니라며 가치관 타령을 하곤 있지만 여우의 포도에 근접할지도 모르겠다. 정작 밑천이 든든했다면 애들은 빡세게 학원 돌리고 주식과 부동산판에 푹 담그고 있을지도. 가보지 않았기에 알 수 없는 일이다.

 

***

 

다음 메인의 '노무현 서거, 여운계 타계'를 물끄러미 본다. 사람에 따라 죽음을 칭하는 말이 왜 다를까? 살아 생전 악담을 밥 먹듯 하던 이들이 미사려구 듬뿍 들어간, 글치만 결코 성찰이 깃들어 있지 않은 조의 표명은 심금을 울리는 바 없어 걍 책 낭독하는 소리로 들린다. 하긴 성찰하는 인간형이라면 평소 표현이 달라졌겠지.

 

대세론을 들으면 머리에 빨간 불이 켜지는 나로서는 모두가 가는 길을 일단 의심하는 습관이 들어 있다. 대세를 따르는 삶이었다면 내가 안티조선에 발 담글 일도 없었을 게다. 노무현은 정치인으로는 매우 드물게 안티조선을 표방하여 끝까지 유지한 인물이다. 글치만 그가 보다 (내가 생각하는) 바람직한 방향으로 가도록 노력한 바 별로 없이, 나는 꽤나 오랫 동안 '바보 노무현'의 이미지를 소비하며 쾌감을 즐겼는지도 모르겠다. 근조 노무현. 편히 쉬시라. (2009.05.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