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까락 운동/일본아 놀자

수치의 문화 -2

섬그늘 2008. 11. 29. 19:21

일본에서 자살은 대개 죄악시되지 않는다. 이건 죽음 이후에 어떻게 되느냐는, 내세관이 서구와 차이가 있기 때문인데, 죽으면 신이 된단다. 그래서 야스쿠니(靖國)신사에 도쿠가와 이래 2차세계대전까지 '나라를 위해 죽은'이 250만명의 영혼을 모셔두었단다.

 

죽어 카미사마(神樣)가 된 영혼을 존중하지 않으면 해꼬지가 돌아온다고 믿는다. 아무리 흉악범이라도 그 시체에 대해 두 손을 모아 예의를 표한다. 뭐, 이거야 그 사회의 사람들의 가치관 문제이므로 뭐라 할 것은 아니다만 국가가 개인의 희생을 독려하기 위해 이데올로기로 발전시킨 혐의는 있다. 불교의 탈을 쓴 원시신앙을 국가가 조직적으로 근세에 통치논리로 개발한 흔적이 있다는 거지.

 

무신 말이냐면, 죽어 신이 되고 후세 사람들이 참배하는 대상이 된다면 나라의 부르심에 응하지 않을 이유가 없어지는 거다. 장렬하게 순국하라고 장려한다. 일본은 보다 정교한 형태일 뿐, 이런 멘탈리티는 어느 나라나 어슷비슷하게 있는 듯 싶다. 한국도 국립묘지에 안장되는 거이 무상의 영광으로 여겨지잖아?

 

야스쿠니 신사에 합사되어 있는 A급 전범 14명의 위패를 보는 시각은 그래서 서구와 일본이 갈린다. 서구의 '죄의 문화'로 보면 도대체 말이 안되는 짓거리인데 일본에서는 이미 신이 되어버린 이의 영혼이 후세에 작용할 수 있고 그 이가 나라(國)를 평안하게(靖) 하도록 빌어야 한다는 것이다. 정치와 종교는 분리할 일이며 내정간섭이라는 주장도 그래서 일본 대중에게는 설득력이 있다.

 

작년 한겨레21에 야스쿠니 유족회 할머니의 인터뷰가 실린 적이 있었는데, 일본의 잘못은 전쟁에 진 것이라고 그 할머니는 말했단다. 태평양전쟁은 원래 선한 전쟁이었다는 것. 이런 인식이 수면 밑에서 강하게 되도록 한 것은 서구의 잘못도 있다. 대개의 사람들은 전쟁을 일으킨 일본을 비난하지만 그거 끝장내기 위해 미국이 선택한 원폭은 크게 나무라지 않는 이중성을 갖는다.

 

미군이 히로시마에 원자폭탄을 투하한 것은 해군 본영이 거기 있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1945년 12월말까지 14만명이 죽은 것으로 추정되는데, 그건 다수 민간인을 의도적으로 살상한 전쟁범죄에 속하며 일본 사람들이 도쿄 전범재판의 권위를 인정하지 않는 논거로 쓰인다. 거기 미국의 원폭투하 의사결정자는 재판을 받지 않았거든. 하여튼 전쟁에 졌으니 어쩔 수 없는 거야...라는 체념. 하지만 마음 속으로 승복한 것은 아닌 거다.

 

해마다 8월6일 아침 8시45분(?)이 되면 히로시마에서 '평화기원회'가 성대하게 열린다. 일본은 세계 유일의 원자폭탄 피폭국가란다. 전쟁의 피해자라는 걸 자라나는 세대에 강조한다. 전쟁을 하며 저지른 만행은 학생들이 아예 배우지 않는다. 모르니 '수치'스럽지도 않다. 이 구조로 오래 가면 침략이 미화되는 거는 시간 문제이다.

 

이렇게 일본의 사례에서 보듯 권력과 경제력을 가진 이가 다음에 추구하는 것은 명예이다. 그 사회의 의사결정 계층이 집단성찰하지 않고 과거를 합리화할 논리는 무궁무진하다. 그래서 그걸 비판하는 처지의 집단은 도덕적으로 월등해야 하는 거다. 대한민국에서 지금 활개치고 있는 한나라당, 뉴라이트의 역사인식, 새교과서 만들기가 가열차게 두들겨 맞아야 하는 이유이다. (2008.11.29)

 

원폭 피해의 규모

http://kin.naver.com/detail/detail.php?d1id=6&dir_id=61402&eid=DrnnZQEszCJn1vL7LEPPsm6oHfN0ksZw&qb=v/jG+CDHx8f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