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까락 운동/태국(タイ;Siam)

방콕 셧다운 엿새째, 주말, 6.15와 대북 송금을 떠올리다 (2014-01-18)

섬그늘 2014. 1. 19. 05:44

지금 시간 1월19일 01:52, 이번 '방콕 셧다운' 대비로 전철 막차 시간을 새벽 2시로 연장했다는 걸 어디서 읽은 기억. 종칠 때 되었는지 스피커 소리는 죽었으나 청중 고함 노래 박수 소리는 여전하다. 대단한 체력이다.


18일 토요일, 늘어지게 늦잠을 자...려 했는데 아침 신문을 보고 사이트 다다다 검색, 게시물 맹그느라 타이밍을 놓쳤다. 객실 청소하는 아주머니 들어와 태국어로 뭐라 열심히 설명. 분위기가 세탁물 없냐는 건데 왜 없겠나, 일주일 모아 놓은 와이셔츠 3장, 내의 상하 각 2장, 양말 3켤레...합계 570바트(1,800엔; 18,000원).

(추가. 서비스료 (한국의 봉사료?) 10%, 부가세 7% 붙여 670바트 되겠슴다 명세서가 세탁물과 함께 돌아 왔다. 웬간한 레스토랑도 같은 식이므로 액면만 보고 판단하면 쓴 맛 보는 수 있겠다.)


오후 4시 호텔을 나서 바로 옆 아소크역으로 향했다. 역에 붙어 있는 6층 짜리 꽤 큰 쇼핑몰인 'Terminal21'에 가서 구경도 하고 운동용품을 사기 위해서다. 대낮 시위 양상을 가까이서 느낄 수 있는 기회이기도 하다.


시위대가 점거한 아스크路에 인접한 카페에서 오후를 즐기는 외국인들. 두 쪽으로 갈라진 태국, 그 속의 이방인들. 나  또한 그 중의 하나. 이런 나를 찍는 다른 카메라도 있을지 모른다. 내가 나비인가 나비가 나인가. 

아소크 거리로 나왔다. 방콕의 주요 간선도로 중 하나인데 사태로 차가 다니지 못한지 엿새 째.

시위를 구경하며 즐기는 태국 내국인, 외국인, 어른 아이 섞여 기념 사진을 열심히 찍는다.


연단 앞에는 꽤 많은 이들이 대낮부터 앉아 있다.아마도 저녁의 즐거움 (온갖 유형의 공연이 다양 계층 연사의 주장 발표 사이사이 배치되어 시간 가는 줄 모른다.) 위해 찜한 것일지도. 이 날 '콘서트'는 새벽2시, 전철 끊기는 시간에 맞춰 '공식적'으로 끝났다. 글치만 새벽 3시된 지금 거리는 사람들 소리로 시끄럽다. 딱 2002년 한국-이탈리아 경기 마친 서울 거리 분위기다.

건너편 고층빌딩과 군중을 한 화면에 잡으려 용 썼다만, 썩 그림이 나오진 않아 안타까운 사진.


사람이 많이 모이니 돈벌이 기회다. 반탁신파를 지지하는 티셔츠를 파는 노점이 줄 지어 있는데

몇 개 찍다 포기했다. 디자인이 다양하여 사진에 담은 10배 이상 되지 싶다. 다 모으는 이도 있지 않을까?


'방콕 셧다운 2014' 세트. 모자, 머리띠, 페던트, 노점은 상상할 수 있는 거진 모든 창의력, 디자인의 집합소다.


이념과 대의를 중시하면 재미가 죽는다. 몇 푼 들이지 않고 소비의 즐거움을 만끽하자는데야. 나야 하나도 사지 않는다. 그러고 보니 2002년 월드컵 때 애들 티셔츠 'Be the Red!'는 사 주었지만 내 부부는 사지 않았구나.


방콕이 다시 시작한다 (Restart)라...농민 빈곤층 소외된 이를 돌보는 것이 바람직한 시작이련만 만고 내 생각일 뿐. 그거 해 줄 태국 좌파는 친탁신파란다. 기존 질서 (민주당, 왕실 따위 기득권)를 엎기 위해 '적과의 동침'을 택했다는. 골수 신자유주의자 탁신과 손잡은 좌파라...신자유주의 대세 거스를 수 없다며 한미FTA를 추진한 노무현을 좌파라고 조선일보 따위가 말했었지. 이 동네도 한국 부럽지 않게 어지간히 꼬여 있다.


아소크 역으로 내려가는 행인들의 짐 검사를 하고 있다. 어제(17일) 폭발물 탓에 경계가 강화된 듯한 모습 둘 중 하나. 근데 폭발물 감지가 되긴 하는 걸까? 마치 검사해서 안 나오면 광우병 변형프리온, 세슘 걱정 없으리라 생각하는 한국 다중 처럼. 대개 검사기의 존재 의미는 안심용이다. 모든 위험 잡아내는 장치란 없다.


사진 많으니 줄이는 것도 귀찮다. 아소크(Asok) 역에 도착했다. 호텔에서 걸어서 5분 거리.

방콕에서는 꽤 큰 역 중 하나인 모양이다. 언제나 사람이 끓는다. 서울 같으면 강남역 정도?


방콕 전철 노선 둘 중 하나인 BTS의 노선도. (다른 하나는 MTR? 나중 확인.) 아소크 역은 노선의 중간 쯤.

어느 종점 까지든 50바트(160엔; 1,600원)에 갈 수 있나 보다. 기본요금 15바트면 방콕의 회사원 점심값 50바트의 30% 정도. 식비 대비는 서울이나 동경과 비슷하지 싶다. 동경은 민영 전철 기본료 260엔이면 제일 싼 쇠고기 덮밥 값인데 보통 회사원 점심 값은 500-1,000엔 수준.


역과 인근 빌딩을 잇는 구름다리에서 내려다본 도로, 역시 노점이 즐비하다.


쇼핑몰 'Terminal21'에 도착했다. 전면에 도착 비행기편을 알리는 전광판은 폼이다. 이 빌딩 전체가 공항 청사를 본따 만든 것이고 1층이 동경, 2층이 런던 식의 이름을 붙이고 있다. 입구에선 제복 입은 이 옆의 검색대를 통과하게끔 되어 있어 공항에 들어가는 느낌을 준다. 설마 실제 검사하는 걸까? 아주 나중 확인해 봐야겠다.


앞으로 꽤나 들를 곳이지 싶어 사진을 많이 찍었는데, 홈페이지에 나오지 싶다. 그래도 기왕 품을 팔았으니 운동용품을 사고 저녁밥 먹은 후 태블릿PC 가격을 알아본 결과 정리하는 게시물에 사진을 모두 붙일 생각이다. 


쇼핑몰을 나선 시간이 20:20경. 4시간이나 썼나? 역으로 통하는 구름다리에서 내려다본 밤의 노점 모습. 위쪽으로 텐트들이 보인다. 잠을 저렇게 해결하는 이들의 하루 최저 비용은 얼마 정도일까? 도시락은 주최측 제공, 아마 음료수도 따라 붙겠지. 화장실은 돈 안 내나? 가끔 목욕도 해야 할 거고 간식비는 하루 50바트 정도?


멀리 사람들이 떼로 몰려 있다. 사연과 생각이 다른 이들이 같은 시공에 있다. 한국 교학사 역사교과서,

야스쿠니 신사 참배가 머리를 스친다. 머리 구조가 판이하게 다른 사람들 끼리 잘도 어울려 살고 있구나. 


예의 구름다리 중앙엔 끈이 쳐져 있다. '복면'한 남자들이 앉아 있는데 시위대 쪽에 폭발물 투척이나 소총 가격을 막기 위해 동원된 모양. 경찰은 아니니 아마도 반정부데모측의 자구책이지 싶다. 위험을 어느 정도 막고 세상 사람들아, 우리 이정도로 위험한 상태예요 어필도 된다. 근데 그 많은 시위대를 다 보호할 수는 없는 일일까? 이들이 막고 있는 것은 사진 왼쪽의 연단이다.


복면은 왜 했을까? 둘로 갈라진 태국 땅, 정치적 성향을 밝히면 불이익 받기 십상이려니. 그렇다면 저 이들은 신념 자원봉사라기보다 돈에 동원되었을 가능성이 높겠거니. 그런 선입견 탓일까, 눈동자가 빛나질 않는다. 시위 비용 충당 성금이 꽤 모이고 있다는 바 그 성금의 사연 또한 제각각일 터. 소비의 경계를 어찌 인식할 것인가, 나는 그러고 있는가.


통로 중앙에 쳐진 끈을 밀어내며 그림 잡느라 애썼다. 어제 게시물에 붙인 사진과 같은 구도, 난간이 나온 흠이 있지만 아소크로(路)를 가득 메운 군중의 함섬. 연사가 먼 말 하는지, 태국어를 알았다면 하는 아쉬움. 근데 이 '봉쇄'로 이 거리의 상점 장사는 망쳤을까, 외려 대목을 맞았을까? 그 희비는 업종에 따라 엇갈리지 싶다.


연사는 '시위를 주도하는' 수테푸 전 부수상이다. 전광판은 휴대전화 사진기로 찍히지 않음을 알았다. 말을 알아 듣진 못하지만 어투는 어눌함에 가깝고 느리지만 힘 차다. 근데 이 아저씨도 부패 혐의가 있다나 보다.


이전 게시물의 '행락객'이 있던 거리. 이 밤은 사람이 보다 많다. 어떻게 될지 모르지만 역사의 현장에 있는 건 사실. 듣고 보고 느끼는 오감의 입력이 사유를 자극할 터. 성찰을 거쳐 아파하고 미래를 이야기하기를 빈다.


성찰이란, 더 바람직할 수 있었다며 과거를 돌아보는 일, 그리고 같은 잘못을 되풀이하지 않겠다는 다짐이다. 이 거리 지나 구석에서 눈물 글썽이는 항공기 승무원 복장의 여성을 봤다. 사진 찍는 게 실례일 터라 지나쳤는데 곧 2000년 6월15일,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만나 악수하는 김대중 대통령의 영상을 보며 눈물 짓던 프레스센터 한국 여직원의 화면을 보며 나 또한 주루루...했던 기억이 떠올랐다. 그 때 중앙일보 톱1면은 대문짝만하게 단 한 줄, '남북이 만났다'와 사진 한 장이었지. 그거 보며 모처럼 그 신문에 감동한 바 있다.


한참 지난 후 대북 송금 뒷거래가 밝혀지고 특검 도입, 임동원 전 국정원장이 처벌받았다. 그때도 나는 내가 정보가 없어 자기 확신 상태에 있었을 가능성을 부인했고, 내가 씹어마지 않던 조선일보가 2000년 그 시점에 '돈 갖다 바쳤다'고 광분하는 걸 웃어 넘겼었다. 밝혀진 후야 초법적 대상이니 하며 위안했겠지. 글치만 설령 반대가 있단들 떳떳이 할 일이었으며 적어도 6.15 시점 이후 적당한 때 백성들에게 알렸어야 했다. 그 조건으로 뒷거래를 했어야지. 나는 침묵했고 이런 취지의 글 쓰는 건 이번이 처음이다. 그러니까리...13년 걸렸구나.


이런 내 체험이 있으므로 나는 성찰이란 참으로 일어나기 어렵다고 두고 있다. 자신의 인식에 오류가능성이 있는지, 사람은 짚어보지 못하는 ('않는'이 아니다) 동물이다. 태국의 열정들 역시 마찬가지. 탁신 이전 정치 엘리트 위주의 반민중성, 반민주성을 깨닫고 거듭 나려면 하나하나의 성찰이 모여야 한다. 그거 한국은 박정희 이후 40년 지나도 내 기준으론 채 이루지 못했다. 인식이라는 괴물과 싸우며 긴 길을 부디 천천히 가시라.


손님을 기다리는 바이크 택시. 목적지를 말하고 즉석 흥정, 오토바이 뒤에 한 명 승객 태우고 질주하는데 손님에게 헬맷까지 제공하지는 않는 모양이다. 대신 무척 싸겠지. 위험과 돈. 사람의 가치. 노동의 가치. 행복의 기준. 생각할 거 많은 주제다. 한국의 대리운전 기사들과 이들 중 누가 더 행복할까? 적어도 상대적 박탈감을 제도적으로 조장하는 사회는 병든 사회다. 행복지수란 게 있어 방글라데시가 상위권이라지. 태국은 어떨까?


이것도 '바이크 택시'의 일종. 오토바이 개조한 3인승인데 부르는 이름 들었는데 까먹었다. 어차피 교통수단별 장단점, 가격을 나중에 정리할 생각인데, 택시비가 원체 싼 터라 (기본요금 35바트; 110엔; 1,100원) 당분간 승차체험할 일은 잘 없지 싶다.


19일 일요일 새벽, 04:30, 거리의 시위대는 거의 모두 잠 자러 간 듯, 간헐적으로 취객의 고함이 들린다. 거리에서 약간 안쪽으로 들어가는 뒷길엔 'Thai Smile Massage', 태국 마사지 업소가 늘비하다. 강남 룸살롱이든 신쥬쿠 가부키쵸든 밤과 조명은 부끄러움을 덮는다. 나는 얼마나 자유로와졌을까. (2014-01-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