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까락 운동/태국(タイ;Siam)

방콕 공항에서 집으로...터미날-1 (2014-02-15)

섬그늘 2014. 2. 15. 12:31

긴 밤 지새우고...이번 1개월 출장의 마지막 방콕 밤을 거의 뜬 눈으로 보냈다. 많은 일이 있었다. 태국 시위, 새롭게 시작하는 앞날을 준비하는 마음 가짐 따위로 거의 매주 호텔에서 소리내어 울었다. 거참...이런 일도 생기는구만 그래. 앞으로 찬찬히 정리하기로 하고, 2014-02-15, 토요일, 출발 날이다.

 

05:40 방을 완전히 나서서 프론트에 택시 신청을 한다. 방값은 어제 미리 치렀다. 새벽에 신용카드 안되면 난감하니까. 34일치 숙박비가 세탁비 음료수 모두 합해 58,000바트. 나쁘지 않다. 구상 중인 '호텔을 집으로' 프로젝트 추진해 볼 만 하다. 융통성 눈꼽 찾기 어려운 일본 회사의 글로벌 체제 구축을 위해 몇 가지 사례를 만들 생각이다. 이것 역시 나중에 진행되는대로 찬찬히 정리.

 

택시 출발이 05:50. 일반 택시다. 일본인 동료는 어제 호텔이 보장하는 800바트 짜리 리무진 택시로 먼저 갔다. 택시운전수가 흥정을 걸어 온다. "공항, 500바트 오케이?" 수작을 같잖게 지켜 보다 내가 응수한다, "200바트잖아, 미터기 꺾어." 내심 시발거릴 터, 미터기 꺾고 슬슬 달리는 폼이 영 미덥잖다. 이러다 늦으면 나만 손해잖나.

 

"06:40까지 도착하면 합계 300바트 주지." 그 말 듣고 신나게 달리기 시작한다. 이번엔 사고날까 겁난다. 올 땐 고속도로 통행료 15바트 낸 기억인데 이번엔 공짜란다. 딴 도로인가? 여하튼 까무룩 졸다 눈 뜨니 공항. 500바트 지폐 건네고 200바트 거스름 받고 영수증 챙기고 짐 내린 후 고맙다며 100바트 건넸다. 고마운 표정. 총계 400바트 나갔으니 여러 모로 득이다. 담엔 전철 MRT+Air Line (16+60=70바트)에 도전해야지.

 

체크인을 하려 ANA카운터에 가니 요상한 안내문이 붙어 있다. 폭설로 일본에서 방콕행 비행기가 뜨지 못했다. 08:20분 출발이 17:30으로 변경 예정이란다. 먼저 간 일본인 동료는 JAL이었다. ANA의 안전 기준이 더 엄격한가? 아니면 7시간 차이로 폭설이 무진장폭설로 바뀌었든지. 여하튼 수속 마치고 큰 가방을 맡겼다. 출국심사 신청서를 안 챙긴 탓에 줄 두번 섰다. 그래도 느긋모드. 시간 밖에 없는걸 뭐.


알고보니 출국심사는 4층이었나 보다. 항공권에 찍힌 게이트 번호 없다. 무슨 사연인가 알아보기 위해 들린 안내데스크. 담배는 피워야 하므로 어디어디 흡연장이 있는지 안내문을 잽싸게 사진에 담는다. 게이트가 아직 정해지지 않았다는 뜻이란다. 아직 뱅기가 저쪽에서 뜨질 않았다는? 살살 약이 오르기 시작한다.

 

일단 시험삼아 근처 흡연장으로 향하는 길. 체크인할 때 ANA 현지 직원 왈, 대단히 죄송 어쩌구 하며 350바트 식권 쿠폰을 주더라. 이게 다냐? 물으니 황공하오나 그렇단다. 폭설 탓이든 벼락 맞았든 제 시간에 비행기 못 댄 건 내 책임 아니잖나. 돌아다니다 보니 어느 새 예상 출발시간이 17:30에서 23:35으로 변해 있다. 23-08=15시간을 어디서 때우라는 거냐, 쉴 곳은 만들어 줘야지.

 

공항 곳곳을 다니며 라운지를 순회하기 시작했다. 큰 짐 맡기기 정말 잘했다 싶다. JAL은 티켓 없으면 아예 못 들어간다. First 라운지 어쩌구는 1,000바트 주면 2시간 쉴 수 있단다. ANA는 어딨나 물으니 Star Alliance. 물어물어 아래 사진의 라운지에 도착했다.

 

    

여기가 ANA, 아시아나 따위 Star Alliance 제휴사 공동의 특별라운지. 타이항공이 운영하나 보다. (같은 이름 라운지가 공항 곳곳에 있다.) 접수대의 30대 중반 여성 태국 매니저, 내가 갖고 있는 ANA티켓은 이코노미인지라 거들떠 보지도 않는다. 아시아나 마일리지 카드를 디미니 실버라 안된단다. 골드 이상만 출입하실 수 있는 몸이시라는. 나도 한때 다이아몬드 회원이었던 적이 있었으매 열 받았다. ANA의 책임자를 대라. 전화번호라도 내 놔라. 니들이 서비스를 아니?

 

접수 매니저가 어처구니 없었는지 ANA 경비를 불렀나 보다. 남녀 2명이 달려와 23:35 확정인 안내문, 450바트 추가 쿠폰을 디민다. ANA 명찰 보니 반갑기 그지 없다. 니 죄는 아닐 거다, 글타고 내 죄겠니? 일본인 책임자 불러 와라, 접수대 앞에서 까칠 따짐 모드. 그래 이런 게 상황 영어 회화 연습이요 스트레스 발산이야. 한참을 무전기로 어딘가 연락하던 태국인 스탭 왈, ANA 담당자가 이 곳으로 5분 이내 전화한단다.

 

ANA담당자는 여성이었다. (2 편에 사진 나온다) 매력적인 음성인데 태국인인 듯, 영어로 흥분 어조 만빵의 내 인생 책임져라 떠드니 네 사정 안다. 그래서 비지니스급으로 격상시켜주련다, 글치만 조건이 있다. 조용히 해라. 손님들이 놀랜다잖냐. 거기에 대해 아 물론입지요. 편히 지낼 공간을 주시는데 얌전히 있을 것을 약속하옵니다. 드뎌 입장을 허락받았다. 떨떠름한 태국인 중년 여성 접수 매니저, 들어가도 좋다신다.

 

짐을 대충 풀고 라운지를 돌아보는 척 하며 여기저기 사진을 찍는 폼새로 접수대 매니저에게 카메라를 들이대자 한사코 숨는다. 글치 켕기는데가 있구나? 사진 찍으면 안되는거냐 물으니 안된단다. 어디 붙어 있냐, 금연 표지는 저렇게 있잖냐, 사진 금지 명시된 메뉴얼 내 놔라 따지자 아침 출근한 접수대 이쁜이가 거든다, 사진은 안돼욧.


   

사진이 정말 안되는지 겪어야 수긍하는 사람이 있는 줄 모르는 모양이다. 여기저기 본격적으로 카메라를 디밀며 찍어 댔다. 표정이 심상찮으면 태블릿으로 몰래 찍는다. 태블릿은 찰칵 소리가 안 난다.

 

   

담배 피고 돌아오니 정문 유리문에 사진금지 아이콘이 붙어 있다. 표독 표정의 접수 매니저에게 아까 저걸 깜빡 못 보고 실례 많았다, 미안 쏘리다. 사과하니 그제야 표정이 풀어진다. 깜찍한 것들. 다 보는 앞에서 사진금지 표지를 사진 찍는다. 이런 Smullyan Logic 문제 풀어본 적 있나 모르겠다, "이 책의 제목은 무엇인가?"

 

묵고 있는 라운지 옆 이슬람 기도장. 오른쪽에 보이는 편한 자세, 요즘 이슬람 기도는 누워서도 하나 보다.

 

공항 이름을 하도 까먹어 찍어 둔 사진. Suvarnabhumi (수바나붐) 공항이다. 여긴 2층인데, 3층에서 내려다 본 2층의 매력 섹시 모델의 광고판을 가까이에서 보려고 내려온 건데 방향이 달랐는지 여기에 이르렀다. 물어물어 3층으로 돌아가려니 형님들이 막는다. 알고 보니 2층-->3층은 출국 보안 검색대를 거쳐야 한다. 라운지에 놓아둔 여권, 탑승권이 공간이동할 리 없다. 2층 검색대 경비책임자에게 사정사정(비행기 지연으로 시간 밖에 없어 2층 관광 왔다, 배째라)해서 검색대, 허리띠 푸는 것만 오늘로 3번 째.


문제의 이쁜 모델. 저 광고판을 자세히 보려 2층으로 내려갔다는 건데 충분히 있을 수 있는 일 아닐까? 다음 기회에 3층에서 2층 내려가는 구석 에스컬레이터 (그거 찾아내 기어내려간 나도 장하다)에 경고문을 비치했는지 유심히 봐야겠다. 없으면? 또 내려가는 거지 뭐. 위 경비책임자 왈, 2층엔 볼 거 없어요, 정말 그렇더라만 첨 간 넘이 어떻게 아나? 글고 담에 또 내려간 다음엔, 어떤 볼 것이 생겼는지 확인하고 싶었다면 그만이다.


    

(왼쪽) 2층 통로 끝까지 간 곳의 안내판. 한국말 보니 반가와서 한 장. 태국은 이상한 나라다. 입국 때는 담배 한 보루만 된다. 출국 때인 지금은 몇 보루 사든 막지 않는다. (아마 모든 나라가 한 보루만 허용할 게다. 2보루여도 눈감아 주는 관행일 따름일 터.)


(오른쪽) 이런 사유로 내 '터미날' 생활이 시작되었다. 어슬렁 어슬렁 재미 있는 거 없나 둘러보며 사진이 쌓인다. 여긴 아마 2층에서 길 잃고 한참 간 길을 돌아갈 때 모습이다. 저 끝 까지 가서 '사정사정'해야 한다.


천신만고 끝에 3층으로 올라와 아까 아무 생각 없이 내려갔던 2층행 에스컬레이터를 찍었다. 아 이 넘들아, 그렇게 깊은 뜻이 있으면 막아 놓든지 경고문(한번 가면 여권 없이는 돌아오지 못함)을 붙여놔야 될 거 아냐,  2층 경비 책임자 청년에게 공격을 날리자 걍 씩 웃는다. 강적임에 틀림 없다.


라운지의 신문 진열대. 동계올림픽이구나. 아침에 본 요미우리 신문. 라운지 매니저에게 말해 하나 챙겼다. 아침에 소란을 떤 덕분이겠지, 오후 당번으로 바뀐 또 한 명의 매력적인 중년 태국인 여성 라운지 매니저가 컴퓨터 부스에서 블로그 작성에 여념 없는 내게 친히 오셨다. 현재 21시 정각, ANA 담당자로부터의 전갈이다. 게이트가 드뎌 확정되었다. C1. 무척 멀단다. 23시 탑승 개시인데 22시30분에는 라운지에서 출발하라는 친절한 지시다. 

 


말씀은 고맙지만 나야 그런 지시 안 따르는 걸 원칙으로 삼는 사람이다. 내가 큰 짐이 없는 상태란 걸 모르므로 여유를 두었을 것 아닌가. 최대한 개기고 22시 45분 출발을 목표로 해 보자. 일단 담배도 필 겸, C1까지 갔다와 봐야겠다. 노니 뭐하나. (사진 용량 제한 걸린 모양이다. 이런 제한으로 뭐가 나아지는지 모르겠다. 적어도 이렇게 투덜거리는 만큼 용량 늘어난다는 걸 다음은 알아야 할 것이다. 2편에 계속) (2014-02-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