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까락 운동/방사능

아사히신문 '프로메테우스의 덫' 불안을 없애라! 2014-06

섬그늘 2014. 8. 9. 02:17

2014년6월, 2일부터 23일까지 아사히신문은 17차례에 걸쳐 2011년3월11일 발생한 동일본대지진 당시 후쿠시마 원전으로부터 30km 떨어진 이타테무라(飯館村)에서 벌어진 일을 담담히 보도했다. 전체를 보면 무엇을 말하고자 하는지 알 수 있는데 부분만 봐서는 헷갈릴 수 있어 17건 기사 모두 링크를 붙이고 요약한다. 그 중 중요한 4건은 전문을 표시했다. (페이스북에 이 게시물을 참조하며 적은 감상은 여기)


내가 감지한 아사히신문의 의도는 '선의와 최악 방지'의 대비다. 그 때 주민들에게 발언했던 2사람의 인간형을 대비하여 '피난할 필요 없다'는 말의 함의 (사후 보상 문제가 걸려 있으므로 정부가 해야 할 말, 이 말이 안 나오는 상태에서 주민들의 피난 거부, 돈이든 질서가 생명과 바꿀 수 있는 가치였냐)를 생각하게 한다. 


기사는 팩트만 담고 있다. 주장은 없다. 그런데 곰곰히 들여다보면 4월11일, 사고 발생 한달 지나서야 피난 명령을 내린 일본 정부, 일본 사회를 통렬하게 까고 있다...고 나는 읽는다. 내 시각으로는 미진하지만 언론의 책임, 아사히신문의 자성도 약간 들어가 있다. 미진하다는 것은 '정보가 없어서'라는 변명이 붙어 있기 때문.


내가 2013년 11월부터 3개월 간 이 주제에 매달리며 접하며 의아해 했던 것은 주류언론, 특히 아사히신문의 침묵이었다. 이 기사 시리즈를 보며 약간의 위안을 받았다. "군자의 반성(복수)은 10년 지나도 늦지 않다"고 한다. "어쩔 수 없었지 뭐"라고 굳어진 일본 다중의 인식에 어느 정도 균열을 가져올지 모르지만 자신을 포함한 다중의 반성을 촉구하는 이 방향성을 지지한다.


***


|프로메테우스의 덫|불안을 없애라!① 철회된 안전선언
http://asahikorean.com/article/newclear_disaster/AJ201406020066
(2014-06-02) 1954년 3월 1일, 역사상 최대의 수소폭탄 실험인 ‘브라보’가 비키니환초(고리 모양으로 배열된 산호초)에서 이루어졌다.(중략) “그들은 안전하다고 말하면서도 ‘코코넛은 먹지 마라’ ‘덤불에 들어가지 마라’ 등의 지시를 했다. 미국이 말하는 ‘안전’이라는 것은 무엇인가?

|프로메테우스의 덫|불안을 없애라!②나가사키의 경험을 살려서
http://asahikorean.com/article/newclear_disaster/AJ201406030063
(2014-06-03) (전략) 2011년 3월 18일 저녁 나가사키(長崎)대학교 교수 야마시타 슌이치(山下俊一∙61)는 후쿠시마 시의 후쿠시마 현립의대에서 약 300명의 직원을 앞에 두고 이렇게 말했다. (중략) “자신 있게 괜찮다, 걱정할 필요 없다고 말할 수 있다. 밖에서 놀고 있는 아이들도 있는데, 이 아이들이 (앞으로) 일본의 버팀목이 된다고 생각하면 방사선 따위에는 반드시 싸워 이길 수 있다고 생각한다.” (중략)

이날 후쿠시마의 방사선량은 시간당 10~12마이크로시버트로 측정됐다. (중략) 피난해야 하는지 전문가의 조언 없이는 판단하기 어렵다. 야마시타 등 전문가의 존재는 중요했다. 당초 정부는 ‘만약을 위한 조치’로 피난 구역을 확대했다. 한편으로는 “당장 인체에 영향을 끼칠만한 수치는 아니”라는 말을 반복해왔다.(후략)

|프로메테우스의 덫| 불안을 없애라!③ 패닉을 경계하라
http://asahikorean.com/article/newclear_disaster/AJ201406040060
(2014-06-04) 이 시리즈에서 아사히신문이 말하고자 하는 가장 중요한 기사로 내가 판단하므로 아래 인용을 길게 붙임. 나중 해설을 붙일 예정.

(전략) 정보가 없기 때문에 안심을 강조할 수밖에 없다는 설명이었다. 당시, 사람들을 안심시키고 싶다, 불안을 해소하고 싶다고 생각한 사람은 야마시타만이 아니었다. 2011년 3월 14일 아사히신문은 피폭보다도 ‘오히려 주민 사이에 퍼지는 공포와 불안감이 더 걱정된다’는 방사선영향연구소 고문의 담화를 실었다. 3월 15일에는 요미우리(讀賣)신문이 사설에서 “정부는……불안 해소를 위해 전력을 다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당시 TV에서는 “건강에 즉각적인 영향이 있는 것은 아니다”는 내용이 반복해 흘러나왔다. 구체적인 방사선량에 대한 정보보다는 “걱정 없다”는 메시지가 먼저였다.
3월 16일 문부과학성은 원전에서 약 20킬로미터 떨어진 나미에마치(浪江町)에서 시간당 195~330마이크로시버트의 방사선량이 측정됐다고 발표했다. 국회 사고조사위원회 보고서에 따르면 이 무렵 정부는 나미에마치와, 마을 대부분이 원전에서 30킬로미터 이상 떨어진 이타테무라(飯館村)에 선량이 높은 지역이 있는 것을 확인했다.
3월 19일, 야마시타와 다카무라는 후쿠시마 현으로부터 ‘방사선 건강위험관리 고문’으로 위촉됐다. 다음날인 20일 자 후쿠시마 현 지역신문 ‘후쿠시마민유(民友)’에는 야마시타가 기자회견을 한 내용이 실렸다. 그는 후쿠시마 제1원전에서 20킬로미터라는 피난지시 범위를 “확대할 필요는 없다”고 분명히 말했다.

|프로메테우스의 덫| 불안을 없애라!④ ‘건강을 걱정할 필요는 없다’
http://asahikorean.com/article/newclear_disaster/AJ201406050073
(2014-06-05) (전략) 야마시타는 정부 방침의 범위 안에서 발언했다.(중략) 수돗물에 대한 대응에 대해 22일 자 후쿠시마 민보에는 야마시타의 담화가 실렸다. “기준치를 넘은 이상 마셔서는 안 되지만, 1년간 1리터를 매일 마신다고 해도 건강상 염려는 없다. ……안심하고 생활해 가길 바란다.”

|프로메테우스의 덫| 불안을 없애라!⑤30킬로미터 이상 떨어져 있어도
http://asahikorean.com/article/newclear_disaster/AJ201406060003
(2014-06-06) 이타테무라(飯館村)는 후쿠시마 제1원전에서 북서쪽으로 28~40킬로미터 정도 떨어진 고원에 위치한다. 2011년 3월 원전사고가 일어나자 피난지시가 내려진 원전 주변의 주민들이 이곳으로 속속 피난했다. (중략) 3월 15일 오후 6시 20분, 이타테무라 사무소 앞에서 시간당 44.7마이크로시버트의 방사선량이 측정됐다. (중략) 23일 (중략) 이날 밤 9시가 지난 시각 원자력안전위원회는 이윽고 ‘긴급시 신속 방사능 영향 예측 시스템’(SPEEDI)의 계산 결과를 발표했다.

|프로메테우스의 덫|불안을 없애라!⑥ 안도하는 분위기
http://asahikorean.com/article/newclear_disaster/AJ201406090081
(2014-06-09) (전략) 야마시타는 24일 나가사키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예상은 했지만 참으로 무서운 일이다. 아이들과 임산부를 중심으로 피난시켜야 한다. 단, (결과는) 이론치로 오차를 검증하지 않으면 안 된다.” (25일 자 나가사키신문) 이 시기에 야마시타가 “피난시켜야 한다”고 언론에서 발언한 것은 확인 가능한 범위 내에서는 이것뿐이다.
25일 오후 (중략) 다카무라는 말했다. “20킬로, 30킬로, 40킬로미터 떨어진 곳에 높은 (수치의) 방사선은 날아오지 않는다.” “100밀리시버트의 내부피폭으로는 1000명 중 1명 (암에 인한 사망이) 발생한다고 한다. 담배보다도 훨씬 낮은 확률이다.”(후략)

|프로메테우스의 덫| 불안을 없애라!⑦ 계속 살아도 괜찮은가
http://asahikorean.com/article/newclear_disaster/AJ201406100067
(2014-06-10) 2011년 3월 25일, 이타테무라(飯館村)에서 열린 나가사키(長崎)대학교 교수 다카무라 노보루(高村昇∙45)의 강연 후, 한 여성이 질문해왔다. “(중략) 물도 흙도 오염돼 버렸다. 여기서 계속 살아도 괜찮은가?” 무라카미 도키코(村上時子∙53)였다. (중략) 다카무라는 “예를 들어 1시간이라면 1시간이라는 제한을 두고 밖에 나가서 놀도록 할 수는 있다고 생각한다. 조심해서 대응한다면 괜찮다”고 답했다. 계속 살아도 되느냐는 질문에는 대답이 없었다. (후략)

|프로메테우스의 덫| 불안을 없애라!⑧ “피난하는 게 좋다”
http://asahikorean.com/article/newclear_disaster/AJ201406110076
(2014-06-11) 이마나카 데쓰지(今中哲二∙63), 스가이 마스로(菅井益郞∙67), 엔도 사토루(遠藤曉∙50), 오자와 쇼지(小澤祥司∙58). 4명의 조사팀을 태운 차가 이타테무라(飯館村) 사무소에 도착한 것은 2011년 3월 28일 오후 5시 무렵이었다. 선량계는 사무소 앞에서 시간당 6.5마이크로시버트를 가리켰다. 한 시간 정도 차로 마을 안을 돌다가 마을 남쪽 부근에 이르렀을 때, 시간당 20마이크로시버트까지 측정할 수 있는 선량계가 눈금 한계치에 달했다. (중략)
이마나카는 이렇게 말했다. “앞으로 어떻게 하면 좋을지 여러분의 판단을 돕기 위한 객관적인 데이터를 제대로 만들고 싶다.” “이타테무라가 상당히 오염돼 있는 것은 확실하다. 그러나 앞으로 어떻게 할 것인지 나는 판단할 입장이 아니다. 그것을 판단하는 것은 행정이며 여러분이다.” 그러면서 그는 “내 친척이 살고 있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빨리 피난하는 것이 좋다고 조언할 것이다”고 말했다.

|프로메테우스의 덫| 불안을 없애라!⑨ 왜 피난시키지 않는가?
http://asahikorean.com/article/newclear_disaster/AJ201406120065
(2014-06-12) (전략) 28일 25마이크로시버트. 당시 이타테무라의 주민 약 6100명 중 약 4000명이 마을에 남아있었다. 나가도로 지구에도 보상을 받을 수 있을지 전망이 불투명한 상태에서 움직이기 어렵다고 생각한 농가나 낙농가가 많이 있었다. (후략)

|프로메테우스의 덫| 불안을 없애라!⑩ 우왕좌왕하는 IAEA 견해
http://asahikorean.com/article/newclear_disaster/AJ201406130061
(2014-06-13) 국제원자력기구(IAEA)는 2011년 3월 30일 이타테무라(飯舘村)의 토양에서 1제곱미터당 200만 베크렐이 넘는 방사성물질이 검출됐으며, 이는 IAEA 피난기준의 2배에 해당하는 수치라고 발표했다.
이에 발표 다음날인 31일 원자력안전∙보안원의 간부가 이타테무라를 방문했으나, 촌장 등에게 곧바로 피난할 필요는 없다고 설명했다. 후쿠시마 현 재해대책본부 역시 “마을의 방사선량은 건강에 문제를 일으킬만한 수치는 아니다”라는 기존의 견해를 반복했다. (중략)

 
3월 31일 IAEA는 이타테무라의 토양오염에 대해 (1)200만 베크렐은 잘못된 수치로 정확히는 2000만 베크렐이었으며, (2)방사성물질은 반감기가 약 8일로 짧은 방사성 요오드131이었다고 말했다. 그러나 다음날 IAEA는 마을 내에서 채취한 토양 샘플 15개의 평균치가 1제곱미터당 700만 베크렐로, IAEA의 피난기준인 1000만 베크렐 이하였다고 발표했다.
국제기구의 견해가 위험과 안전 사이에서 우왕좌왕하고 있었다. 그런 와중에 4월 1일 나가사키(長崎)대학교 교수인 야마시타 슌이치(山下俊一∙61)가 이타테무라로 들어간다.

|프로메테우스의 덫| 불안을 없애라!⑪ 제대로 알고 무서워해라 
http://asahikorean.com/article/newclear_disaster/AJ201406160057
(2014-06-16) (전문을 모두 표시함) 2011년 4월 1일, 야마시타 슌이치(山下俊一) 나가사키(長崎)대학교 교수(61)가 이타테무라(飯舘村) 사무소를 방문했다. 이날 사무소 앞에서는 시간당 7마이크로시버트 수준의 방사선량이, 마을 남쪽에 위치한 나가도로(長泥) 지구에서는 20마이크로시버트 전후의 방사선량이 측정됐다. 야마시타는 후쿠시마 현에서 제공한 정보와 보도를 통해 이러한 데이터를 파악하고 있었다.


사무소에서 마을 간부와 마을의회 의원 등을 대상으로 한 설명회가 열렸다. 한 직원이 야마시타의 발언을 상세히 기록하고 있었다. 야마시타는 이렇게 말했다.


“현재 이타테무라의 방사선량을 보면 외부피폭은 문제없다. 내부피폭이 문제지만, 암에 걸릴 위험이 증가하는 것은 연간 100밀리시버트 이상. 그 미만이라면 위험은 없다고 생각해도 좋다.”

임산부와 아이를 위해서 어떤 대책을 마련하면 좋은가라는 질문이 나왔다. 야마시타는 다음과 같이 대답했다.
“임산부는 안전한 곳으로 피난하는 것이 정신적인 케어까지 포함해서 생각하면 바람직하다. 그러나 어느 정도 연배가 있는 남성의 경우 여기서 열심히 살아보려는 사람이 있다면 그건 그거대로 좋다고 생각한다.”

SPEEDI(긴급시 신속 방사능영향 예측시스템)의 계산 결과가 3월 23일에 발표된 후 야마시타는 원전에서 30킬로미터 떨어져 있다 해도 “앞으로를 생각해 피난 권고 대상으로 해야 한다”(24일 자 후쿠시마민보)고 말했다.
그럼 이타테무라에 왔는데도 왜 피난을 권고하지 않았나. 여기에 대해 야마시타는 다음과 같은 내용을 나가사키대 홍보과를 통해 서면으로 답했다. (요지)

“며칠 거기에 있는 것만으로 일반인 피폭이 100밀리시버트를 넘을 것으로 예상되는 긴급사태시에는 무조건 피난해야 한다. 후쿠시마 현내에서 열린 강연에서는 피폭량이 100밀리시버트보다 적으면 그 영향은 거의 나타나지 않는다는 사실을 전하며 냉정한 대응을 호소했다.”
“주민들이 불안해하는 것은 당연하며, 피난하고 싶어하는 사람들까지 말릴 생각은 없었다. 그러나 정든 곳을 떠나는 것 자체가 큰 스트레스가 되기 때문에 지역별 피폭선량을 감안하면서 모두가 그 위험의 정도를 알 수 있도록 설명했다. 기본적으로 보호해야 하는 사람은 여성과 아이들이라고 생각했다. 이를 반복해서 설명했다.”
“이타테무라에서는 아이와 임산부의 피난에 대해 언급했으나 현지에서 열심히 분발하려는 자세를 지지하는 의미에서 ‘나이가 어느 정도 있는 남성은 걱정할 필요가 없다’고 말했다. 피난지시는 정부가 내려야 한다고 생각해 거기까지는 언급하지 않았다.”

이타테무라를 방문한 4월 1일 밤, 야마시타는 NHK 뉴스에서 이렇게 말했다. “불안을 느끼는 것은 이해하지만 제대로 알고 무서워해라.”

|프로메테우스의 덫| 불안을 없애라!⑫ 전문가가 안심해도 된다니까
http://asahikorean.com/article/newclear_disaster/AJ201406170073
(2014-06-17) (전문을 모두 표시함) 2011년 3월 25일은 다카무라 노보루(高村昇∙45)의 강연회가, 4월 1일에는 야마시타 슌이치(山下俊一∙61)의 설명회가 열렸다. 2명의 나가사키(長崎) 대학교 교수가 이타테무라(飯舘村)에서 강연한 후 “방사능은 걱정할 정도가 아니”라는 분위기가 마을에 퍼졌다. 


일단 마을 외부로 피난한 주민의 일부는 전문가의 말을 듣고 마을로 돌아왔다. 당시 마을 상공회의 청년부 부부장이었던 사토 겐타(佐藤健太∙32)는 그 무렵 트위터에 “주민들은 지쳐 있다. … 마을 주민은 힘이 없다. 그런 나약함을 이용해 일방적으로 안전하다고 주장하는 정부나 현에 (주민들은) 안심을 느끼게 해주길 바라고 있다”는 글을 올렸다.


3일 마을 남부 나가도로(長泥) 지역에서 낙농업을 하는 다나카 가즈마사(田中一正∙43)를 만나기 위해 그의 동료 하세가와 겐이치(長谷川健一∙60)가 찾아왔다. 다나카는 나가도로의 빗물받이 밑에서 며칠 전 방사선량이 시간당 1100마이크로시버트에 도달했었다고 말했다. 주변에서는 아이들이 놀고 있었다. 놀란 하세가와는 차를 타고 마을사무소로 향했다. 마침 그곳에 있던 마을의회 의원에게 “왜 주민을 피난시키지 않느냐”고 소리쳤다. 그러자 의원은 “그게, 전문가가 안심해도 된다니까…”라고 대답했다.


다음날 4일 교토대학교 원자로실험소의 이마나카 데쓰지(今中哲二∙63) 등의 조사팀이 이타테무라에서의 활동보고를 인터넷에 공개했다. 3월 15일부터 90일간의 누적피폭량은 나가도로 마가타(曲田)에서 95밀리시버트, 마을사무소에서 30밀리시버트인 것으로 예측됐다. 정부가 피난기준으로 검토하고 있는 연간 20밀리시버트를 초과했다.


이토나가 고지(絲長浩司) 니혼(日本)대학교 교수가 이끄는 이타테무라 후방지원팀은 4월 4일 방사선량이 높은 지역의 주민을 마을 안팎으로 피난시킬 것 등을 마을에 제안했다. 이틀 후인 6일 다카무라 노보루가 나가도로에서 방사선의 영향에 대해 강연했다. 나가도로에서는 방사선량이 시간당 20마이크로시버트 전후인 상황에서 주민 약 200명이 생활하고 있었다. 다카무라는 마을이 3살 미만의 유아와 보호자, 임산부 중 희망자를 후쿠시마 시에 일시 피난시킬 방침이라는 것을 사전에 알고 있었다. 


당시 이타테무라 전역에는 영유아 약 100명과 임산부 10명 정도가 남아 있었다. 다카무라는 강연에서 “아이와 젊은 어머니는 잠시 나가도로 지역을 떠나 있는 게 좋을 수도 있다”는 취지의 말을 했다.
이날 이타테무라의 교육장 히로세 가나메(廣瀨要人∙67)는 문부과학성의 총괄심의관으로부터 전화 연락을 받았다. “이타테무라가 피난구역이 될지도 모른다.”

|프로메테우스의 덫| 불안을 없애라!⑬ 강사는 알고 있었다
http://asahikorean.com/article/newclear_disaster/AJ201406180075
(2014-06-18) (전문을 모두 표시함) 긴키(近畿)대학교 교수(당시) 스기우라 노부유키(杉浦紳之∙52)가 후쿠시마 현에 들어간 것은 2011년 3월 23일 전후로, 긴급시 신속 방사능영향 예측시스템(SPEEDI)의 계산결과가 발표돼 방사능 확산이 확실해졌을 즈음이었다. 도쿄대학교 의학부 출신으로 방사선방호학을 전문으로 하는 그는 정부의 방사선 고문으로 위촉돼 방사능이 건강에 끼치는 영향을 주민들에게 설명하게 됐다.


후쿠시마 현지사 사무실에 인사차 찾아갔더니 먼저 온 손님이 있었다. 나가사키(長崎)대학교 교수 야마시타 슌이치(山下俊一∙61)였다. 그러나 그 자리에서 강연 내용 등에 관해 야마시타와 미리 상의하지는 않았다. 스기우라는 그 후 현지 텔레비전과 라디오 방송에도 출연해 방사선 기초지식을 설명했다. 


4월 8일 아사히신문은 1면에서 교토대학교 원자로실험소 이마나카 데쓰지(今中哲二∙63) 등의 조사팀이 3월 15일부터 3개월간 이타테무라(飯舘村)의 누적방사선량을 30~95밀리시버트로 시산했다고 보도했다. 기사에서는 “1년 후의 누적량은 약 70~220밀리시버트에 달할 가능성”이 있다고 밝혔다.


기사가 나온 이틀 후인 4월 10일 스기우라는 이타테무라를 방문했다. 강연회가 열린 이타테(飯館)중학교 체육관에는 약 300명의 주민이 모여 있었다. 마을 남쪽의 나가도로(長泥) 지구에서는 이날 시간당 18.7마이크로시버트가 계측됐다. 이타테무라의 선량을 스기우라는 “절대 낮지 않다”고 봤다. 그러나 “피난 조건이 갖추어져 있다면 피난도 한 방법이겠지만 서둘러서 피난할 수준은 아니다”고 생각했다. 임산부와 유아에 대해서도 같은 판단을 했다.


강연에서는 마을에 계속 살기 위해 어떤 노력을 해야 하는지 설명했다. 스기우라는 동행한 원자력안전∙보안원 직원으로부터 이타테무라가 곧 피난구역으로 지정된다는 것을 강연 전에 들었다. 그러나 강연에서는 그 점에 관해서 언급하지 않았다. 


이날 저녁 내각 부관방장관인 후쿠야마 데쓰로(福山哲郎∙52)가 후쿠시마 시내에서 이타테무라 촌장과 만났다. 후쿠야마는 이타테무라를 ‘계획적 피난구역’으로 지정할 방침이라고 전했다. 정부는 이 방침을 다음날인 11일 언론에 발표했다.


지금, 스기우라는 말한다.
“(정부) 발표 전날 강연회가 잡힌 것이 불운이었다. 정부의 일원이라는 입장에서는 정식 결정이나 공식 발표 전에 내 입으로 곧 피난 지시가 내려질 것이라고 주민 여러분에게 말할 수는 없었다.”
스기우라의 강연이 끝나고 질의응답이 시작됐다. 한 젊은이가 일어섰다.

|프로메테우스의 덫| 불안을 없애라!⑭ “100% 안전한가?”
http://asahikorean.com/article/newclear_disaster/AJ201406190072
(2014-06-19) (전문을 모두 표시함) 2011년 4월 10일 오후, 이타테(飯舘)중학교에서 열린 강연회에 모인 주민 중에는 당시 이타테무라 상공회의 청년부 부부장인 사토 겐타(佐藤健太∙32)의 모습도 보였다. 정부의 방사선 고문인 스기우라 노부유키(杉浦紳之∙52)의 강연이 끝나자 사토가 질문하려고 일어섰다.

“지금 이 상황에서 100% 안전하다고 말할 수 있는가?”
강한 어조였다. 이어 농가를 경영하는 간노 신고(菅野愼吾∙30)가 일어섰다.
“방사선 레벨은 안전하다고 하지만, 토양은 오염돼 있다. 아이들이 놀다가 흙이 입에 들어갈지도 모른다. 위험하면 위험하다고 확실히 말해달라.”

간노는 그해 1월부터 친구의 권유로 후쿠시마 제1원전에서 3달 동안 임시 작업원으로 일했다. 처음에는 방사선에 대한 강습을 받았다. 그 후 15명 정도로 팀을 구성해 발전에 사용한 물을 모아두는 지하 탱크를 점검하는 작업을 했다. 작업 중에 방사선량이 높아지면 몸에 부착된 선량계에서 선량이 높아지고 있다는 알람이 울리더니 곧 경고음으로 바뀌었다. 하루 2, 3시간 작업으로 피폭선량은 100마이크로시버트, 많은 날은 800마이크로시버트에 달했다.

3월 11일 간노는 3주 만에 월차를 냈다. 그 날 오후, 대지진이 일어났다. 다음 날 아침에 부인과 아이를 니혼마쓰(二本松)시로 피난시키고, 원전으로는 돌아가지 않았다.

간노의 집에는 선량계가 있었다. 빗물받이 밑을 측정하면 100~200마이크로시버트에 달한 적도 있었다. 주민을 피난시켜야 한다고 몇 번이나 마을의회에 말했지만 마을의 독자적인 판단으로 피난시키면 보상을 받지 못할 우려가 있다며 단번에 거절당했다.

스기우라의 강연회가 열리기 얼마 전인 4월 초에 간노의 집으로 사토 등 친구 4, 5명이 모였다. 지금까지 마을에 온 전문가들은 “이타테는 안전하다, 안심해달라”는 말을 반복해왔다. 그것이 오히려 간노 등의 불안을 부채질했다. 피난을 못 가게 하려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이번 강사도 똑같은 말을 한다면 질문을 던지자.”
간노, 사토 등은 각자 질문 내용을 분담해 그날 강연회장으로 향했다.
스기우라는 이 같은 사실을 전혀 알지 못했다. 강연회가 끝난 후 한 나이가 지긋한 여성이 스기우라에게 다가와 말했다. “밖에서 농사일을 하지 말라고 남편이 말했지만, 방사선이 무섭지 않다는 것을 잘 알았다.”

|프로메테우스의 덫| 불안을 없애라!⑮ 한 달 후의 피난지시
http://asahikorean.com/article/newclear_disaster/AJ201406200082
(2014-06-20) 2011년 4월 11일 일본정부는 후쿠시마 제1원전에서 20킬로미터권 밖의 일부 지역을 ‘계획적 피난구역’으로 지정한다고 발표했다. 사고발생 후 1년간의 누적 방사선량이 20밀리시버트에 달할 우려가 있는 지역이 지정대상으로, 이타테무라(飯舘村)는 전역이 계획적 피난구역으로 지정됐다. 피난구역의 주민은 한 달 정도의 준비기간 후에 권외로 피난하는 것으로 결정됐다. 11일 후쿠시마 시 남부에 있는 현립의과대학교 야외양궁장의 빗물받이 아래에서는 시간당 30마이크로시버트의 방사선량이 측정됐다.


보도를 통해 마을 전체의 피난지시를 알게 된 오카모토 야스시(岡本易∙79)는 “이건 얘기가 다르지 않은가”라고 생각했다. 3월 25일의 강연을 듣고 “나가사키(長崎)의 피폭자 의료 전문가가 하는 말이니까 틀림없다”고 안심했던 그였다. (하략)


|프로메테우스의 덫| 불안을 없애라!⑯ ‘걱정할 필요 없다’는 발언의 진의
http://asahikorean.com/article/newclear_disaster/AJ201406230075
(2014-06-23) (전문을 모두 표시함) “100밀리시버트 이하라면 걱정 없다”, “미량이라도 피폭되면 위험하다는 것은 잘못된 생각이다”….


나가사키(長崎) 대학교 야마시타 슌이치(山下俊一∙61) 교수는 원전 사고 발생 당시 이러한 발언을 반복했다. 그리고 그 진의를 서면을 통해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요지). “발언의 취지는 ‘100밀리시버트까지 허용하자’는 것이 아니고 ‘건강에 장애가 나타날 가능성이 있는 100밀리시버트까지는 피폭되지 않았기 때문에 과도한 불안을 가지지 말고, 제대로 알고 무서워하라’는 것이었다.” 


그러나 동일본대지진 발생 전인 2008년 9월 나가사키 현에서 열린 일본 임상내과의학회에서 야마시타는 “주로 20세 미만의 사람들이 과도하게 방사선에 노출되면 10~100밀리시버트 사이에서도 발암의 위험성을 부정할 수 없다”고 말했다.(일본 임상내과의회 회지 2009년 3월호)


이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해야 하는가. 야마시타는 학회에서 전문가들에게 불필요한 방사선 이용을 피하도록 경고한 발언과 일반인을 향한 발언은 그 “대상과 설명의 시점이 다르다”고 답변했다. 일반인을 향한 발언의 경우 불안을 초래하지 않도록 배려했다는 취지이다. 


이처럼 방사선이 건강에 미치는 영향을 ‘이야기하는 방식’에 대해서는 작년 12월 도쿄대학교에서 열린 일본 생명윤리학회 연차대회에서도 거론됐다. “임상 현장에서는 환자를 안심시키기 위해 전부 다 말하지 않는 선택지도 있는 것이 아닌가”라는 취지로 한 철학자가 발언한 것에 대해, 회장에서는 “한 명의 환자를 상대로 반응을 봐가면서 이야기하는 경우와 불특정 다수의 집단에 이야기하는 경우를 같은 상황으로 보고 이야기할 수는 없다”, “어떠한 상황에서도 사실 그대로를 전하는 것이 중요하다” 등의 목소리가 나왔다. 


환경성 등은 올해 2월 ‘방사선과 갑상선암에 관한 국제워크숍’을 도쿄에서 개최했다. 기자회견에서 야마시타는 “지금도 100밀리시버트 이하는 안전하다고 생각하느냐”라는 질문을 받았다. 그러자 야마시타는 “그것은 한번 피폭됐을 때 100밀리시버트라는 의미이다. 당시는 비상사태였기 때문에 안전하냐 아니냐를 분명히 말해야 했다. 원래는 국가가 해야 하는 발언이었다”, “발암 위험이 증가하는 기준은 100밀리시버트 이상이지만 100밀리시버트의 환경에서 계속 산다는 것은 있을 수 없다. 이런 의미를 제대로 전하지 않은 것에 대해서는 대단히 죄송하게 생각한다”고 답변했다.

|프로메테우스의 덫| 불안을 없애라!⑰完 스스로 판단하며 살아간다
http://asahikorean.com/article/newclear_disaster/AJ201406240068
(2014-06-24) “아무리 발버둥 쳐도, 울어도, 원전에서 유출돼버린 방사능을 이겨낼 수는 없다. 분한 마음에 가슴이 찢어질 듯한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다.” 간노 에이코(菅野榮子∙78)의 애절한 목소리가 도쿄대학교 농학부 강당에 울려 퍼졌다. 작년 3월 30일, 이타테무라(飯舘村)에 대한 지원과 조사활동을 해 온 이토나가 고지(絲長浩司∙62), 이마나카 데쓰지(今中哲二∙63) 등의 모임 ‘이타테무라 방사능 이콜로지 연구회’가 주최한 심포지엄에서의 일이었다.(중략)


이타테무라는 2011년 4월에 연간 피폭선량이 20밀리시버트를 넘을 우려가 있다고 해 계획적 피난구역으로 지정됐다. 마을 주민이 모두 피난한 것은 약 3개월 후였다. 2012년 7월에는, ▽피난지시해제준비구역 ▽거주제한구역 ▽귀환곤란구역의 세 구역으로 마을이 재편됐다. 현재 마을에서는 정부에 의한 제염작업의 당면목표를 ‘연간 5밀리시버트 이하’로 설정하고 작업을 서두르고 있다. (중략)

“방사능에 대한 생각은 사람마다 다르다. 그러니 스스로 정보를 모으고 판단해 삶을 결정할 수밖에 없다고 나는 생각한다.”“방사능 때문에 피난하지 않았다면 이런 말도 못했겠지만. 아하하.”
=完
조마루 요이치=上丸洋一 편집위원

(2014-08-09)